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의 영혼 Jun 10. 2023

토목 공사와 나무 살리기

나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생명이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정착을 위해 뭐든 한 가지씩 준비할 때마다 마음은 주저앉는다. 토목 공사를 시작했다. 설계 도면 건네고 견적 달라했더니 정확한 금액은 공사를 해봐야 안단다. 뭐 그동안 경험한 바로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게 시골정서려니 하고 마음을 접었건만 여전히 쉽게 적응이 안 된다. 한두 푼짜리 일도 아니고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공사를 노점상 장사하듯 하니 그렇다. 공사 날짜도 정확하지 않다. 앞에 일 끝나는 거 보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쯤 시작하겠다며 간식 준비를 해달란다.


간식준비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공사비만 건네면 다 알아서 하는 줄 알았다.

산림집도 아니고 농막이라 평소 도시에서 반찬 몇 가지 준비해서 캠핑 다녀오듯 하는데 난감했다. 간식거리 살만한 번듯한 가게 하나 없는 동네다. 마트 한 번 다녀오려면 면소재지까지 나가야 한다. 후다닥 몇 가지 집어 서둘러 와도 왕복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도 연락이 없다. 월요일에 시작하겠거니 하고 우리는 일요일에 내려갔다. 도착해 전화했더니 화요일부터 하겠단다.


도시에서 2~3일 정도 분량의 장을 보고 커피 과일 주스 빵 다과 등을 준비해 갔다. 예상보다 하루 늦게 시작하니 빵류는 날짜가 지나버려 고작 화요일 하루밖에 해결이 안 된다.


둘째 날 간식은 또 어쩌지! 다행히 면소재지에 있는 마트는 일찍 영업을 시작한다. 아침 8시가 오픈이다. 오전 간식을 주려면 일찌감치 나서 서둘러 다녀와야 한다. 물가는 도시보다 더 비싸고 별로 살만한 것도 없다.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과일 몇 가지와 빵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아 돌아왔다.


오전 간식을 챙겨주고 점심때가 되면 우리 차에 태워 점심 식사하러 식당엘 다녀와야 한다. 식대도 당연히 우리가 지불. 아침 일 시작하기 전 커피, 점심 식사 후에 냉커피(식당 자판기 커피는 안 마심), 오전 10시 오후 3시 하루 두 번 간식. 아! 숨이 차다. 공사를 맡기고 이런 뒷감당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이다. 매번 다른 메뉴를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과 정해진 시각에 맞추어 준비해야 하니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뒷전이다. 신경을 쓰고 나니 온종일 밭일한 것보다 더 피곤하다. 일이라도 제대로 잘해주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을게다.


계곡 쪽 돌 쌓기를 하며 일하기 불편하다고 나무를 전부 잘라내겠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안될 일이다.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을 나무다. 내가 뭐라고 살아있는 오랜 수령의 그 나무를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무는 그저 필요 없으면 버리는 물건에 불과했다. 나는 일하기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나무는 최대한 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나무 세 그루가 살아남았다. 그로 인해 백만 원이 넘어가는 하루 공사가 더 걸렸으니 비싼 가를 치른 셈이다. 보조로 일하는 석공 하루 인건비가 20만 원이다. 첫날 오전 석공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살린 나뭇가지 세네 개 잘라낸 게 전부다. 그런데 석공이 그 나뭇가지 자르느라 전기톱을 가져왔다고 그날 인건비 5만 원이 추가됐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나무를 살리겠다고 고집을 부린 내 탓이려니 하고 넘길 수밖에.


갈수록 태산이다. 돌을 실어 나르는 차량 숫자를 속이는 데는 만정이 떨어지게 했다. 거기다 처음 토목설계도를 건네고 그대로 해달라고 하는 공사는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4일이 걸리고도 일을 끝내지 못했다. 돌도 부족하고 흙도 수십대가 들어와야 한단다. 들어갈 돈은 다 들어가고 공사는 중단되었다. 현장을 보고 있노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더 이상 믿고 일을 맡길 수 없게 되었다. 집을 짓는 건 내년 3월부터라서 달리 방법을 찾을 시간적인 여유는 있어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이곳에 토지를 구매하고 농막 하나 들여놓는 순간부터 갈등이 생겼었다. 우리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경제적 부담도 그렇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이런저런 일들에 부딪칠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마다 우리가 왜 도시를 떠나 살고자 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겼던 그 단단했던 초심!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버렸다. 지금처럼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생활하는 게 아닌 집을 짓고 이주해 살게 되면 이 모든 게 지나간 일이 되리라. 어디에 살건 모두 좋은 것만 누릴 수는 없다. 도시에서 누렸던 편리하고 좋았던 삶은 추억으로 남기리라. 지금 겪는 이 마음의 상처들이 자연에서 내가 꿈꾸었던 삶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여겨야겠다.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고요함으로 채워지곤 했다. 씨앗을 뿌리면 새싹이 올라오고 꽃도 피고 열매가 열리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환희를 느꼈고 겸손함도 배우지 않았던가.

202305


이전 15화 휴가철 활기 넘치는 봉평 오일장(2, 7일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