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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쏠과 넬의 전설을 아시나요?

by 부지깽이


뜬금없이 '아이리스 마녀 의혹'을 제기하고 킥킥대던 넬의 배에서 갑자기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넬이 얼굴에서 웃음을 싹 지우고, 며칠 굶은 표정으로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입을 열었어요.

“오늘은… 특식 없나요…?”


쏠이 혀를 쯧쯧 차며 앞발로 넬의 옆구리를 쿡 찔렀어요.

“야! 누가 들으면 우리가 특식 때문에 일하는 줄 알겠다! 아이리스, 저는 그냥… 츄르 하나만 더 주세요. 사료는 좀 … 텁텁해서요.”


“아이구! 요 요물들~”

아이리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어요.


“2층 올라가서 샴이나 데리고 내려와.”

“넵!”


녀석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 올라가자, 아이리스는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준비했어요.


잠시 후 카페 한가운데 긴 테이블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치죽과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세 토막, 그리고 우유 세 그릇과 커피 한 잔이 놓였어요.


2층 찜질방에서 푹 자고 내려와 쏠, 넬 사이에 앉은 샴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어요.

“무지개다리 건너기 전에 이렇게 따뜻한 식사를 하게 될 줄은… 정말 고맙습니다.”

쏠과 넬도 코끝이 찡했지요.


"와구와구 쩝쩝~"

"츄르릅 츄릅 꿀꺽~"


야무지게 발라낸 고등어살을 오물거리던 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리스를 바라보았어요.

“근데요… 제 이름, 왜 넬이에요?”


우유를 핥던 쏠도 고개를 들었어요.

“저도 궁금해요. 제 이름이 왜 쏠인지?”


샴도 파란 눈을 반짝였어요.

“저도 듣고 싶어요! 이름의 비밀!”


아이리스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셋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 보았어요.

그리고 동화 읽어주는 할머니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먼 먼~, 아주 먼 옛날, 무지개 너머 하늘나라에 해와 달이 살고 있었단다.

해는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멋쟁이였고, 달은 호기심 많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말괄량이였지.


해는 밤에도 검은 망토를 걸치고 다녔단다.

아침이 오면 망또를 멋있게 펄럭여 어둠을 떨쳐내고, 세상을 환하게 밝혀 주었지.
그래서 해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는 노란색이었단다.


달은 반짝이는 은빛 머릿결을 가졌지.
밤마다 바다 위에 파란 물결을 일렁이게 해서 세상에 아름다운 자장가를 불러줬지.
그래서 달의 눈동자는 파도처럼 파란빛으로 반짝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던 해와 달이 깊은 숲속에서 울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단다.


“해야, 저기 봐. 저 작은 고양이… 길을 잃었나 봐.”


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늘의 규칙을 떠올렸지.
“달아, 우리는 마음대로 땅에 내려갈 수 없어.”


해의 말에 달은 입꼬리를 삐죽이며 발을 동동 굴렀단다.
“규칙이 뭐가 중요해! 저 어린 것이 저렇게 울고 있는데…."


그 순간— 하늘이 둘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고양이가 있는 숲으로 무지개를 띄워 줬어.


"이제 됐다"

달은 흥분해서 발을 굴렀고, 해는 달을 보며 씩 웃었지.


그렇게 해와 달은 무지개를 밟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단다.

그런데 땅에 가까워질수록— 둘의 모습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어.


해는 노란 눈동자를 가진 지혜롭고 듬직한 검은 고양이가 되었고, 달은 눈처럼 하얀 털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가슴 따뜻한 장난꾸러기 고양이가 되었단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는 태양, 즉 솔라(Solar)라는 단어에서 뜨겁고 단단한 느낌의 ‘쏠’이란 이름을 얻었지.

흰 고양이는 달, 즉 노트(Nótt)란 단어가 파도처럼 물결쳐서 소리내기 쉬운 ‘넬’이 되었단다.





"우와아!"

"꺄아~옹"


아이리스가 이야기를 마치자 쏠과 넬은 감탄사를 터트리며 어깨춤을 췄어요.

아이리스는 녀석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죠.


부러운 눈으로 테이블을 콩콩 두드리던 샴이 아이리스에게 물었어요.

"그럼, 할머니 이름은 왜 아이리스에요?”


아이리스가 빙긋 웃자, 쏠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해 줬어요.

“아이리스는 신화에 나오는 무지개의 여신이야. 고양이들이 건너갈 무지개다리를 띄워주시거든.”


쏠의 옆에서 킥킥대던 넬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이리스를 쳐다 봤어요.

“그런데… 정말 여신 맞아요? 메아리거울 다룰 때 보면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 같던데….”


"요 녀석이 또!"

아이리스는 입에 거품을 물고 픽~ 쓰러지는 시늉을 했어요.

카페는 금세 웃음바다가 됐고, 유쾌한 온기가 오래오래 물결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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