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기타 선율처럼 흐르는 어느 날 밤,
쉼터 카페 2층 창문을 차가운 바람이 ‘사르르’ 속삭이듯 스쳐 지나갔어요.
그 순간, 메아리 거울이 희미하게 흔들렸고 아이리스가 조용히 눈을 떴죠.
그녀는 거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어요.
“아주 희미한 흔적이군. 자유로운 영혼, 재니스... 흩어지기 전에 찾아야 할 텐데.”
재니스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조용히 숨이 멎었어요.
그리고 자신이 죽었다는 걸 정확히 알았죠.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자신의 죽은 몸 근처에 머물지 않았어요.
그냥… 가볍게 등을 돌려 떠났답니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내가 찾는 자유는…아직 저 멀리 있어.”
그녀는 그렇게 떠났어요.
재니스의 영혼은 도시의 지붕 위를, 오래된 기찻길을, 낡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붉은 벽돌로 된 담장 위를 끝없이 떠돌았죠.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방황이 아니었어요.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위한 아주 특별한 여정이었거든요.
아이리스가 쏠과 넬에게 말했어요.
“재니스의 영혼은 너무 멀리 떠나 버렸어. 그래서 메아리 거울로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단다.”
옆에 서 있던 키팅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이번 임무는 절대로 쉬운 게 아니야. 죽은 걸 알고도 떠난 영혼은, 절대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테니까….”
쏠과 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반드시 재니스를 찾고 말겠다는 결심이 담긴 눈빛으로요.
도시의 밤은 시끄러웠지만, 재니스가 거쳐간 곳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가로등 불빛은 희미했고, 서늘한 바람 속엔 오래된 노랫말이 실려 있었죠.
셋은 밤낮 없이 도시 곳곳을 뒤졌어요.
지붕 위에서 지붕 위로 뛰고, 낡은 기찻길을 건넜죠.
바람에 찢긴 포스터가 흩날리는 담장 아래까지 살폈어요.
셋의 발바닥엔 먼지가 가득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어요.
셋이 도시의 끝에 있는 한적한 바닷가를 헤매고 있을 때였어요.
해가 뉘엿뉘엿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죠.
해변 한 쪽 모래밭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게 보였어요.
갈기처럼 길고 풍성한 털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죠.
그녀의 두 눈은 살며시 감겨 있었지만, 그 안엔 오래된 노래와 추억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어요.
노르웨이숲 고양이, 자유로운 영혼… 바로 재니스였죠.
그녀는 머리에 빨간 천을 두르고, 앞발로 기타를 꼭 끌어안고 있었어요.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긴 털이 살랑였고, 노을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갔죠.
“이 순간이 바로 자유야!”
그녀는 낮게 읊조리고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시작했어요.
노을도, 파도도, 바람도, 그리고 그녀를 찾아 헤맨 소울 가이드 셋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노래가 끝나고, 키팅이 그녀 앞으로 다가가자, 재니스의 시선이 조용히 그의 얼굴로 향했어요. 그리고 둘은 몇 마디를 나눴어요.
쏠과 넬은 귀를 쫑긋 세웠지만, 둘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어요.
잠시 후, 재니스는 조용히 일어나 아무 말 없이 키팅의 뒤를 따라 걸었어요.
쉼터로 돌아가는 길, 키팅이 맨 앞에서 천천히 걸어갔어요.
그 몇 걸음 뒤를 재니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갔고, 쏠과 넬은 재니스의 뒤를 조용히 쫓았죠.
쏠과 넬의 눈에 비친 재니스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문득 넬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죠.
“진짜 멋있다…”
그때였어요. 재니스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툭 던지듯 말했어요.
"고양이들은 늘 뭔가에 쫓기지. 그런데 진짜 자유는 뭔지 알아?"
쏠과 넬은 재니스의 다음 말이 궁금해서 귀를 바짝 세웠어요.
“뭔데요…?” 넬이 참지 못하고 물었어요.
재니스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어요.
“자유는 더 이상…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가벼웠지만 바위처럼 묵직했어요.
쏠과 넬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쉼터에 도착한 재니스는 잠시 2층에 올라가 포근한 담요 위에 몸을 뉘었다가 이내 1층으로 내려왔어요.
카페 한쪽 스툴에 앉은 그녀는 살며시 기타를 꺼내 들고 줄을 튕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쉼터에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퍼져나갔어요. 재니스의 대표곡 ‘Piece of My Heart’였죠.
쏠과 넬은 조용히 그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어요.
재니스의 영혼을 찾느라 지친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고, 재니스가 알려준 자유의 의미가 주는 묵직한 감동이 가슴 속에 스며드는 것 같았답니다.
다음 날 점심.
쉼터 2층 베란다에 무지개가 떴어요.
키팅과 쏠, 넬은 베란다에 나란히 서서, 재니스를 배웅했어요.
재니스는 싱긋 웃으며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그런데 다리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달려왔어요.
“헉!”
쏠과 넬은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고, 키팅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죠.
재니스는 쏠과 넬 앞에 멈춰 서서 외쳤어요.
“자유란 단지 또 다른 말…”
쏠과 넬이 동시에 외쳤어요.
“… 더는 잃을 게 없다는 말일 뿐!”
재니스는 환하게 웃고 쏠의 왼쪽 볼, 넬의 오른쪽 볼에 살짝 입을 맞췄어요.
그리고 목청을 높여 외쳤죠.
“카르페 디엠!”
그리고 그녀는 키팅을 향해 달려가 와락 안겼어요.
“캡틴! 오 마이 캡틴!”
재니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키팅의 눈가에도 물방울이 맺혔어요.
잠시 후, 키팅은 고개를 들어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가리켰어요.
어느새 무지개가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었죠.
재니스는 셋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지개다리로 뛰어갔어요.
잠시 후 1층 카페.
셋이 내려오자, 아이리스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아이스티를 내려놓고 사라졌어요.
쏠이 재빨리 물었어요.
“캡틴! 어떻게 된 거예요?”
키팅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어요.
“재니스는 내가 고양이 학교에 있을 때 제자였어.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지. ‘카르페 디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아이였단다.”
넬이 참지 못하고 물었어요.
“바닷가에서 재니스한테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아, 그거? 나랑 아는 사이란 걸 너희한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
“네에? 왜요?”
쏠과 넬이 동시에 물었어요.
키팅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어요.
“소울 가이드는 항상 신중해야 해. 자기가 아는 영혼을 찾았을 때 감정적으로 대하면 자칫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고,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둘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남은 아이스티를 마시고는 조용히 지하로 내려갔어요.
쏠과 넬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말했죠.
“카르페 디엠!”
※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 재니스는 요절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재니스 조플린을 모티브로 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