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블루 고양이 해피에게 집사는 세상의 전부였어요. 집사에게도 해피는 힘든 세상 속 유일한 안식처였죠.
암에 걸려 투병하던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어요.
우울증에 걸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식사하는 것도 잊었고, 밤엔 눈물로 베개가 흠뻑 젖었어요.
그에게 남은 건 조용히 그의 곁을 지키는 해피뿐이었어요.
해피의 눈동자는 푸르고 깊었어요.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빛 하나로 집사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해피도 암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집사의 마음은 다시 한 번 무너졌어요.
길고양이들에게 흔한 림프종이었죠.
고통스러워 우는 해피는 굉장히 두려워 했어요.
그들이 처음 만났던 추운 겨울밤보다 더 떨었지요.
집사는 해피를 꼭 끌어안고 약속했어요.
"절대로 너 혼자 떠나게 하지 않을게!"
집사는 우울증 약을 끊었어요.
병원도 가지 않고, 친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지요.
집사와 해피는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낮엔 햇살을 쬐고, 밤엔 달빛에 젖어 함께 잠들고 함께 야위어 갔어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조용히, 아주 느리게 흘러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 해피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어요. 해피를 끌어안고 있던 집사가 해피의 가슴에 살며시 손을 얹었지요.
떨리던 그의 손이 서서히 멈추고, 해피의 가슴도 차갑게 식었죠. 그렇게 둘은 거의 동시에 숨이 멎었어요.
잠시 후 집사와 해피의 영혼 앞에 하늘에서 하얗게 빛나는 계단이 내려왔어요.
집사는 해피를 안고 계단을 오르려고 했지요.
하지만 해피는 집사에게 안긴 몸을 비틀었어요.
해피는 고양이는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고, 집사도 해피의 눈빛을 보고 금세 알아차렸어요.
그래서 천천히 해피를 바닥에 내려놓았답니다.
집사는 자꾸 뒤돌아보면서 계단을 올라갔어요.
해피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죠.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직전, 집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어요.
“해피! 거기서 만나자. 내가 널 데리러 꼭 다시 내려 올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해피의 영혼은 바람처럼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잠시 후, 한 소울 가이드가 도착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해피의 영혼은 보이지 않았지요. 소울 가이드는 힘없이 쉼터로 돌아가 아이리스에게 상황을 보고했어요.
아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키팅과 쏠, 넬을 불러 메아리 거울 앞에 섰어요.
그녀의 앞발이 거울을 스윽 쓰다듬자, 해피의 희미한 기억 조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
거울 속에는 어린 해피가 벚꽃 아래에서 뒹굴던 날.
캣타워 위에서 집사 부부에게 뽀뽀를 받던 날.
비 오는 날 담요 속에 꼭 안겨 있던 날이 천천히 지나갔어요.
키팅과 쏠, 넬은 거울 속 화면을 바라보다가, 바람처럼 밖으로 달려나갔지요.
하지만, 며칠 동안 도시 곳곳을 발이 닳도록 뒤졌지만 해피의 영혼을 찾지 못했어요.
그렇게 닷새째 되는 날 저녁.
셋은 해피가 살던 집, 잔디밭 벤치에 앉아 부은 발을 주물렀어요.
“우리가 무엇을 놓친 걸까?”
쏠이 중얼거렸고, 넬은 어둑해지는 하늘만 바라봤어요.
바로 그때ㅡ
담장 위에 앉아 있던 늙은 길고양이가 한마디 ‘툭’ 던졌어요.
“혹시… 거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