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다. 늘 널뛰기하지만 오를 때는 확 오르고 내릴 때는 찔끔찔끔 내려가는 유가에 주유소 가는 길이 무겁다. 새 차도 장만했으니 잘 챙겨 주고 싶은데 주유소 들어가는 입구에 일반 휘발유보다 10% 이상 비싼 고급휘발유라는 간판이 보인다. 왠지 저걸 넣으면 차가 더 잘 나가고 엔진이 더 보호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고급 휘발유는 반드시 넣을 필요는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의 원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휘발유를 사용하는 가솔린 엔진은 공기가 들어오고 연료가 분사되고 공기와 연료가 잘 섞인 후에 스파크 플러그에서 불꽃이 일어나면 점화가 되어서 폭발이 발생하고 그 힘으로 피스톤을 밀어서 동력을 만들어 낸다. 엔진이 두 번 도는 동안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나니 2000 rpm이다라고 하면 1분에 1000번 (실제로는 4기 통이니 4천 번) 폭발이 일어난다.
보통은 점화 플러그에서 시작한 화염이 자연스럽게 벽면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폭발이 너무 격렬하게 일어나다 보면 아직 점화 플러그에서 시작한 화염이 벽면에 도달하기 전에 벽면 쪽에 있던 연료가 압축 가열되어 자체적으로 폭발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엔진에서 “탁, 탁” 이런 소리가 나는데 그래서 이를 노킹 - Knocking이라고 부른다.
원래 엔진 벽면에는 윤활유가 고르게 발라져서 점화 플러그로부터 화염이 와도 벽면에 손상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 주는데 이런 노킹 현상이 생기면 너무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연소실 벽면에 보호막에 균열이 생기고 엔진에 큰 손상을 주곤 한다. 노킹 현상은 점화 플러그에 불꽃을 점화하는 시기가 빠를수록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엔진 개발을 할 때는 최적의 점화 시기를 튜닝하는 것이 큰 작업이다.
이런 노킹 현상은 연료 내에 옥탄이라고 하는 안정적인 화학 성분이 많을수록 덜 발생한다. 그래서 옥탄을 100으로 기준을 삼아 자기 폭발 현상(자발화)이 덜 일어나는 정도에 따라서 옥탄가 95 이상의 고급 휘발유와 91~94 수준의 일반 휘발유로 나뉜다. 나라마다 법으로 정한 기준이 다 다른데, 높을수록 순도가 높고 공정이 더 많이 들어가서 더 비싸다.
그럼 고급 휘발유를 쓰면 더 엔진이 보호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사실 한국에 생산되는 모든 차량들은 일반 휘발유 92 기준으로 개발이 되어 있다. 그리고 노킹이 발생하게 되면 엔진의 이상 진동을 감지해서 이상 연소를 확인하고 점화 시기를 뒤로 늦추어서 엔진을 보호하는 로직이 모든 차량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노킹 현상이라는 것이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벽면 가까이 있는 연료가 스스로 폭발하려면 고온 고압으로 압축 가열이 되어야 발생하는데 이런 경우는 액셀 페달을 최대로 밟는 급가속 고속 주행이 아니고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그래서 고급 휘발유를 쓴다고 해서 더 안전하거나 연비나 출력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수입차량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일반 휘발유의 옥탄가 기준이 95로 한국보다 높기 때문에 한국 주유소에 판매하는 옥탄가 92 일반 휘발유를 쓰면 기술적으로 노킹이 발생할 수 있다.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게 주유소 탓이든 운전자 탓이든 1차적인 보증 책임은 자동차 제작사가 책임져야 하니, 수입차 서비스센터에서는 더 안전한 고급 휘발유를 넣는 것이 좋다고 권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볼보든 포르셰든 벤츠든 모든 수입차도 국내 판매를 위해서는 옥탄가 92인 표준 휘발유로 성능 인증을 받아야 한다. 아니라면 판매 전에 별도의 고객 고지가 있어야 한다. 현재 볼보 홈페이지 유저 매뉴얼에 보면 옥탄가 95는 일반 주행에 사용할 수 있고 옥탄가 98은 최적 성능 최소 연료 소비량을 위해 권장한다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유럽 기준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뜻인데.. 여기에 92 정도인 일반 휘발유를 넣는다고 해서 노킹 현상이 마구 나는 건 아니다. 노킹이 나더라도 금세 학습해서 점화 시기를 뒤로 미루어 노킹이 일어나지 않는 일반 휘발유에 맞는 시점을 알아서 조정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점화시기를 뒤로 미루면 그만큼 연소 효율은 떨어지기 때문에 최고 출력은 3~4%, 연비는 1~2% 정도 줄어들지만, 우려하는 내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자유로에서 지옥의 레이스를 즐기거나 엄청 더운 여름에 태백산 고갯길을 빠르게 오르는 주행을 자주 하는 분이 아니라면 비싼 돈 들이지 말고 일반 휘발유로도 충분히 안전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수입 회사들마다 한국만을 위한 튜닝을 따로 하는 경우도 있고 보증 정책이 다르니 유저 매뉴얼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언덕길 오르는데 엔진 소리가 좀 이상하고 힘이 다른 때 비해서 많이 모자란다는 느낌을 받으시면, 주유소를 다른 곳으로 바꿔 보고 계속 지속되시면 가까운 AS에서 점화 장치 위주로 확인을 해 보면 좋을 거다. 고급 휘발유가 비싼 값어치를 하는 경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제 2장 귀하게 만난 내 차와 친해지기
2-1 충분히 거칠지만 또 부드러워야 하는 새 차 길들이기
2-2 기름값도 아끼고 부드러운 운전도 칭찬받는 연비 주행법
2-3 고급 휘발유가 비싼 값어치를 하는 경우는 따로 있다.
2-4 사람이나 차나 나이가 들수록 관리를 받아야 한다
2-5 검증하고 보증하느라 자동차 정품 부품은 늘 좀 비싸다.
2-6 믿을 수 있는 카센터를 찾는 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