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다.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고 도로에 물이 흥건하면 핸들을 잡은 손이 긴장된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쭉쭉 미끄러지면 조심조심 속도를 줄여서 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빗길은 나은 편이다. 겨울에 눈이라도 와서 빙판길이 되면 곳곳에서 접촉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무릇 좋은 차란 가고 싶을 때 가고, 서고 싶을 때 제대로 서야 하거늘 미끄러운 길에서는 서야 할 때 멈출 수 없으니 운전이 고행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래전 한국 타이어 광고처럼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급정거를 하는 차가 “끼익”하는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지는 모습을 많이 봤을 거다. 승용차의 경우에는 앞바퀴에 수지를 이용한 브레이크 패드가 둥근 금속 디스크를 양쪽으로 눌러서 속도를 줄여 주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고 뒷바퀴에는 드럼형으로 브레이크 슈가 냄비처럼 생긴 드럼 안쪽 면을 밀어 제동을 하는 드럼형 브레이크가 있다.
두 형식 모두 다 급제동을 걸면 이런 제동 장치를 통해 타이어의 회전은 멈추게 되지만 자동차는 관성에 의해 마치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멈춰 선 타이어의 한쪽 면만 도로와 마찰을 일으키며 Skid 마크를 남기며 미끄러지는 현상을 브레이크 잠김 현상(Lock)이라고 한다.
잠시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고등학교 시절 물리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물체와 물체가 맞닿아 발생하는 마찰력은 멈춰 있을 때는 크게 작동하지만, 한번 움직이고 나면 운동 마찰력이 작동하면서 그 크기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니 급제동을 밟아서 타이어가 잠기고 차가 미끄러지게 되면 차가 받는 마찰력도 줄어들고 제동거리는 더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타이어와 지면이 분리된 상황이기 때문에 핸들을 돌리더라도 차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차가 회전하거나 미끄러지니 사고의 위험이 더 커지게 된다.
이렇게 미끄러지는 걸 풀어 주려면 열심히 발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놓았다를 반복해서 타이어가 잠기지는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예전에 숙련된 테스트 드라이버 분들은 발로 그렇게 하셨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그것도 급박한 충돌 순간에 이런 동작을 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ABS 시스템은 브레이크 유압 시스템을 자동으로 조절해서 1초에 10회 이상 이런 밟았다 풀어 주었다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를 통해서 브레이크 중에도 핸들을 통한 조향을 가능하게 하고 최단 거리에 차량을 정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유압 제어 외에도 자동차 자세를 유지시켜 주기 위한 다양한 조작들을 가능하게 한다. 각 바퀴 별로 스피드 센서들이 있는데 여기서 감지되는 바퀴 간 회전 속도를 분석해서 만약 한쪽 바퀴가 잠기면 그쪽만 유압을 제어해서 네 바퀴의 접지력이 동일하게 만들어 준다. 눈길에 미끄러져 차가 잘 안 나가면 보통 사람들은 오히려 엑셀을 더 많이 밟곤 하는데 바퀴가 제대로 지면과 맞닿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엔진만 출력을 내면 바퀴가 헛돌면서 오히려 더 많이 미끄러지게 된다. 그래서 미끄러움을 인지되면 운전자의 요청에 상관없이 일시적으로 출력 제한을 걸고 기어 단수를 높이기를 변속기에 요청하는 등 차가 일단 제어가 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자동으로 취한다. 안전이 제일 우선이니까...
이런 ABS가 작동하게 되면 “꾹꾸 국” 하면서 핸들과 브레이크 패드로부터 진동이 느껴진다. 차는 출력이 일시적으로 제한되고 계기판에 미끄럼 표시나 ABS라는 등이 깜박깜박하지만 고장이 아니라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니 안심해도 괜찮다. (만약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상황에서도 평상시에 미끄러짐 경고등이 켜져 있다면 브레이크 시스템 고장인 경우이니 가까운 정비 센터로 가셔서 수리받아야 한다.) ABS가 있다고 모든 사고가 예방되는 건 아니지만 미끄러운 길에서 급제동을 걸어주는 상황에서 차를 제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다고 ABS가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차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야 안전한 법, 되도록 Brake가 잠기는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차와의 안전거리 충분히 확보하시고 과속이나 급가속하지 마시고, 되도록 발로 밟는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최소로 사용하고 감속이 필요할 때는 엔진 브레이크 같은 다른 기능들도 활용하면서 안전 운행하면 최고다. 자동차에 숨은 기술이 필요 없는 주행이 제일 좋은 주행이다.
제 4 장 새로운 기술들이 차를 더 편하게 만든다.
4-1 더 작지만 더 힘센 터보 엔진 이야기
4-2 스포츠 모드와 에코 모드를 설정하면 차는 어떻게 달라지나?
4-3 운전이 서투른 초보도 기사님들처럼 주행하게 해 주는 기술은 없나?
4-4 위기의 순간 충돌을 막아 주는 ABS 이야기
4-5 이제는 운전면허 시험은 시동만 켜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거 아니야?
4-6 운전자, 보행자, 자율주행차는 누구를 보호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