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굳이 이런 길을 골랐을까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1년 조금 넘게 지났을 때였다. 대표님이 회사 모든 직원들에게 메일을 하나 보냈다. 영업팀에서 사람을 새로 뽑으려고 하는데, 혹시 지금 회사 다니는 사람들 중에 영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메일이었다. 그 메일을 받은 사람들 중에 나만 손을 들었다. 나는 사실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영업 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 메일을 보고 손을 든다고 해도 바로 나에게 영업팀에 들어갈 기회가 오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회사에 계속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손을 들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대표님을 세 번쯤 찾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바쁜 와중에도 회사가 궁금해서 찾아온 사람이니 시간 쪼개서 만나줬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만약에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영업 사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대표님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나에게 퇴짜를 놓았다. 내가 너무 학자처럼 보여서 영업이랑 안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원래 하던 일이 잘 안 풀려서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심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되었고, 그런 내 모습이 '학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대신 강의를 많이 했던 경험을 인정받아서, 교육 담당자로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전에 나는 청소년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수업을 했다. 이 회사에 와서는 성인들에게 소프트웨어 쓰는 법을 가르치게 되었다. 교육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 본 경험이 그래도 몇 년 치 쌓여서 그런 것 같다. 교육받으신 분들이 교육 잘 들었다며 소감을 얘기해 주면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뭔가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 장소나 일정을 내가 정할 수가 없으니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러다 영업팀 직원들이 회사를 쉬거나 그만두게 되어서 빈자리가 생겼다. 나는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드디어 나도 영업 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영업팀으로 옮기고 나서 나는 전보다 더 일에 만족하게 되었다. 바라던 대로 적극적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니,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영업 사원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 적극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영업 사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일한다는 건 회사에 돈벌이가 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니고, 건수를 한 번 찾아내면 그게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져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어느 정도 하다가 '이 정도면 됐겠지'하고 멈춰도 별 문제가 없었다. 좋게 보면 눈치가 빨랐던 덕분이고, 나쁘게 보면 어렵거나 힘들겠다 싶은 일들을 피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게 살 때는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내가 만든 우물 안에서 혼자 행복하게 사는 신세가 되어갔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가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나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인지 부하를 심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도 이전에 내가 막막하다고 느꼈던 문제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느껴질 때, 나는 내가 멈춰 있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느낌들을 이곳에 하나씩 기록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