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초짜의 개똥철학
우리 회사 영업팀에서 일을 가장 잘하던 직원이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영업에 대해서 1도 모르던 나로서는 그 직원을 롤모델 삼아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보고 배울 사람이 갑자기 없어진다니 적잖이 아쉬웠다. 게다가 그 직원이 맡고 있던 일 대부분을 내가 넘겨받았기 때문에, 그 친구의 구멍을 메우려면 그만큼 빡세게 일해야 했다.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꽤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일을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직원이 회사를 나가기 전에, 둘이서 술을 진탕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 직원이 내게 영업을 뭐라고 정의하는지 물었다. 서로 거나하게 취한 김에 개똥철학 토론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뜻이었을까. 나로서는 영업 사원이 된 지 반년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라 아직 생각을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했었다. 나는 그에게 영업이란 '교환의 사슬'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는데, 나는 그 대답이 아주 투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오히려 내 말을 그럴듯한 이야기라며 좋아했다. 그가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 예상을 못 했기 때문에, 나는 꽤나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이전 글에서 나는 영업 사원이 되고 나서 전화를 정말 많이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렇게나 많은 전화를 하면서 내가 하게 되는 말은 결국 '내가 전에 그걸 해줬으니 당신은 이제 이걸 해달라'는 것이거나, '이번에 이걸 좀 해주면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사겠다'는 따위의 것들이다. 반대로 나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들은 '당신네 회사에 돈 주고 물건을 샀으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 하는 것 어니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면 나는 우리 회사에 그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자원이 있는지, 그 서비스를 해주면서 돈을 더 받아야 할지 말지, 이반에 이 걸 해주면 나중에 뭘 달라고 할지 같은 것들을 다시 계산해 본다.
물론 다른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일 때문에 누군가와 연락할 때면 이렇게 뭔가를 주고받는 이야기를 하기는 할 것이다. 다만 영업 사원은 상대에게 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다(영업 사원이 돈 얘기를 할 때 가장 강력한 상대는 역시 고객사의 구매팀 사람들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안젠가 따로 한 번 써보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것들을 교환하고 살지만, 그 중에서도 회사와 회사 사이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교환은 모든 교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업 사원이 돈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 사원은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그 직원은 나보다 경험이 훨씬 많으니, 이런 점들을 단번에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영업은 교환의 사슬이다'라는 개똥철학 한 마디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지 싶다. 정작 나는 그때만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시험 보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아무 답이나 찍듯이 한 말이었다. 그런데 반년 정도 지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듯하게 잘 찍은 것 같다. 이제는 영업 사원은 회사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회사를 대표해서 고객의 돈과 교환하는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 나더러 그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