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 그룹 비서실과 다이버
When scuba diving, it’s essential to breathe slowly, deeply, and evenly.
10만 명이 일하는 그룹 전체에 플로피디스크 한 개로 컴퓨터를 구동시키고 다른 디스크로는 데이터를 저장하던 80년대 말 1세대 컴퓨터가 딱 2대 존재했다. 그중 한대가 마치 보물 전시품처럼 사무실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구도 작동하는 방법은 물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요즘으로 치면 3D 프린터에 해당하는 12개 색연필로 이미지까지 그릴 수 있는 책상만 한 최신식? 프린터도 함께 있었다. 전해 듣기로는 컴퓨터 본체와 프린터를 합쳐 2억 원 정도라고 했다. 30평 아파트 가격이 5천만 원 하던 시절이니 귀한 사무기기를 넘어 조그만 빌딩 한 채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분명히 가치를 인정할 만한 그만한 용도가 있을만한데도 입사한 이후 작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바다 생각만 간절!
매월 말 20여 개의 가족사에 그룹 공통비를 일정 기준에 의해 배분하고 이를 공문을 통해 통보하는 업무를 마치는데 2명의 인력과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인력과 시간을 떠나 1원이라도 틀리면 안 되는 정말 '스트레스' 쌓이는 일임은 분명했다. 아무도 자발적으로 해 본 적인 없고 입사년차가 어느 정도 올라가서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이면 순서적으로 배정되는 '의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입사한 지 3년이 넘어가자 그 일은 내 차지가 되었고 도와주는 후배도 없이 혼자서 1주일 꼬박 밤을 새워야 마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숫자가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어마어마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하였다. 마침 그때,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해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탈출구로서 바다 생각을 더욱더 많이 하곤 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수소문을 해서 다른 한대의 컴퓨터가 경영관리팀에 있고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차장님이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그 컴퓨터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뛸뜻이 기뻤고 무작정 찾아가서 프로그램 언어를 가르쳐달라고 반강제적으로 조르고 졸라서 2달을 밤낮으로 매달린 끝에 '분담금 정산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수중 호흡은 깊고 길게 천천히!
무슨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전 직원이 퇴근한 새벽시간, 그 넓은 사무실 공간에서 처음 프로그램을 구동시킬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쉼표'와 '마침표' 하나 잘 못써서 프로그램은 수시로 멈췄고 72시간 동안 프로그램 언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눈이 짙무르도록 수십 번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체크, 수정해야만 했다.
컴퓨터 블루스크린에 프로그램 언어가 자동으로 쓰이고 그에 따라 플로피디스크 내의 데이터들이 '철커덕철커덕' 소리를 내며 들락거리는 모습이 푸른 바닷속에서 '깊고 천천히' 호흡하는 '흡~~ 푸....'소리와 겹쳐지는 비몽사몽 간의 몽환적인 경험을 겪곤 했다.
결국 두 사람이 1주일 걸리던 분담금 정산업무는 혼자서 반나절이면 끝나게 되었다. 만일 그룹 가족사 분담금 정산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는 사항만 공개하지 않는다면 한 달에 6일 정도는 공식적으로 휴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너 달은 스쿠버다이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데...'란 악마의 유혹을 며칠 낮밤과 꿈속에서 조차 고민 고민한 끝에 드디어 결심했다.
바다처럼 푸르게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