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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계학 서설 II Dec 02. 2024

#10 5mm, 25층, 그리고 100kg

CH I. 그룹 비서실과 다이버

A scuba wetsuit and a belly pooch are sworn enemies!

시파단의 모래톱만큼 날씬한 몸매가 필요했다

  회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78kg, 182cm로 나름대로 표준체형이었다. 낮밤, 주말, 휴일 없는 비서실 생활 10년 만에 체중은 95~96kg로 거의 20kg가량 불어버렸다. 일단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우선과제이다 보니 식사시간은 불규칙해질 수밖에 없었고 아침, 점심은 건너뛰고 늦은 저녁 기름진 식단과 음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다 보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5mm 웹슈트와 스쿠버 ’ 몸매‘

  다이빙 웹 슈트(Wetsuit)는 기본적으로 몸에 딱 달라붙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평균기온을 감안해서 여름 몇 주만 제외하고는 봄, 가을엔 5mm 두께의 웹 슈트가 적당하다. 겨울은 보온을 위해 물이 슈트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드라이슈트가 필요하다. 웹 슈트가 5mm 정도면 상당히 두꺼워 체중이 많이 나갈 경우, 입고 벗기는 물론 입수 전까지 1시간 이상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힘듦'이 지속된다. 꽉 조이다 보니 숨 쉬기도 쉽지 않고 낚싯배를 이용하여 섬으로 이동할 경우 그 불편함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입수 전에 빨리 갈아입으면 되지만 동료다이버와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시간이 늦어지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도 있다.


  레저스포츠는 일단 좀 보기에 멋있어야 행복하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중성부력'에 문제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몸에 착 달라붙는 웹 슈트를 입으면 몸매가 보기 좋을 리가 없다. 그러면 일단 다이빙 버디(buddy)로부터 약간의 신뢰감을 잃게 만든다. 또한 '부력'을 많이 받다 보니 빠른 입수를 위해 웨이트 벨트(Weight Belt) 상대적으로 더 차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입수, 출수 자세는 물론 수중에서의 유영 모습이 옆이나 뒤에서 볼 때 자신 스스로조차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그러면 흥미를 잃게 되고 점점 물과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어있다. 체중이 많이 나갈 경우, 수중의 자유로움은 육상의 2-5배에 달하기 때문에 물밖로 나오는 순간 상대적인 박탈감은 엄청나다. 이 같은 갈등을 더욱더 물속의 무중력을 즐기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보단 육상의 중력 안에서 '안주'하길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이어트가 건네준 수중의 ‘자유와 편안함’

  물밀듯이 다가오는 수중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다이빙 강사 교육을 마친이후로 더욱 체중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위한 별도의 시간을 낼 수는 없었고 출퇴근 동선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계획을 짰다. 매일 아침 기상하자마자 윗몸일으키기 100회, 아파트 단지 10바퀴 뛰기, 아침운동 후 15층 집으로 걸어 올라오기, 출근 시 25층 사무실 걸어 올라가기, 점심시간 이용 25층 두 번째 걸어 올라가기, 자정전 집에 도착, 아파트 단지 10바퀴 뛰기, 자기 전 윗몸일으키기 100회-30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다 보니 15kg을 뺄 수 있었다. 하루 1번 미숫가루 한 컵이 식사의 전부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 기간 동안 왜 그리 공식 오찬, 만찬이 많은지, 수많은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 건물 뒷마당에서 애 굿은 담배만 태웠다.


  다이어트로 만든 82kg 몸무게는, 5mm 웹 슈트를 입고도 5-6kg 웨이트 벨트만 차도 입수가 가능하게끔 도와주었고 결국 물속에서 거의 날아다닐 정도로 편안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무중력과 '행복', 한걸음 더 나아가 사고의 범위를 '멋과 아름다움'의 세계로 넓히는 밑거름도 되었다. 수중사진과 영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재호흡기(rebreather), 동굴 다이빙, 대심도 및 난파선 다이빙까지 레크리에이션을 넘어 테크니컬 다이빙으로 이끌어주었다. 수중 105m 무서울 정도의 '고요함', 수중동굴 1km 안의 신비스러운 무지갯빛 아지랑이, 그리고 창조의 비밀을 지닌듯한 칠흑 같은 암흙,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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