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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계학 서설 II Dec 01. 2024

#9 돌아 돌아 드물게 ‘수중’을 만나다!

CH I. 그룹 비서실과 다이버

I became a diver after going through many twists and turns, which was truly a once-in-a-blue-moon experience.

다이버의 꿈,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이루다

  "이대리! 이번 연휴에 뭐 하나?" 건설 홍보실 임 과장님이 다가오는 추석명절에 '스쿠버다이빙'을 배우자는 느닷없는 제안을 해 왔다. 뉴욕 연수중 바하마에서 본 스쿠버다이버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2년째 어디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는 하늘이 도운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백색? 거짓말로 명절 차례를 건너뛰고!

  미국 가족에게 가 봐야 한다는 기러기 아빠의 애절한 사연으로 명절 제사는 이번에 한해서 겨우 어른에게 참석 면제 승인을 받았다. 미국 생활 3년 차이던 집사람에겐 늘, 항상 비서실 직원에게 비공식적으로 요청되는 명절 연휴기간 해외출장이란 그럴듯한 관례를 핑계 삼아 4박 5일간의 필리핀 보라카이로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Open Water) 교육을 떠날 수 있었다.


  회식자리에서 스쿠버다이버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동기는 물론 주위 동료들은 말도 안 되는 헛된 욕심이라고 했다. 시간과 비용이 넉넉히 필요한 다이버의 문화와 그룹 비서실 생활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고 서슴없이 단언까지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스쿠버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아니 로그 1,000회 이상 물속에 들어간 테크니컬 전문 다이버라 하면 주변에서 깜짝 놀라는 것은 물론 그동안 깜쪽같이 몰랐다는 표정을 넘어 나의 평소 모습과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드문’ 다이버이다!

  그때마다 나의 평상시의 모습이 무엇인가? 살짝 궁금해진다. 아마 얌전하고 짜인 틀에 갇힌 말썽 하나 없는 모범생, 샌님 이미지-그 언저리가 분명한 모양이다. 그런데 깊은 바닷속 수중동굴을 1km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면 정말 많이들 놀래곤 한다. 가족은 지금도 이 사실을 아직 반밖에 모른다.


  오픈워터 교육에서 돌아오자마자 임선배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강남 중심가에 그 당시로는 너무나도 낯선 재즈 전문식당 'once in a blue moon'을 오픈했다. 가게 이름에 담긴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글쎄'였다. 여하튼 가게 분위기와 이름이 어감상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선배자체도 참 보기 드문 사람이었지만 내가 그룹 비서실에서 드물게(onece in a blue moon) 스쿠버다이버가 되고 30여 년 동안 레크리에이션(Recreation)부터, 테크니컬(Technical) 다이빙까지 섭렵하게 해 준 선배이다. 더욱이 그는 내가 다이버로 지중해, 홍해, 태평양, 대서양, 호주, 카리브해, 인도양 등 오대양의 바닷속을 즐길 수 있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은인인 셈이다.


  아! 그때 그 시절(my good old memories)

  지난 그룹 비서실 3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사실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45세 이른 나이에 그룹 가족사 중, 특히 상장회사 대표이사 사장이 된 것이 아니다. 한 해 신규 매출을 400억 달성, 전국 20여 개 단지 수천 세대의 아파트를 100% 분양완료, '살수록 정이 드는 집'이란 브랜딩으로 서민주택을 무료로 고쳐주거나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한 아파트를 지어준 일들, 그 어느 것들 중 하나는 더더욱 아니다.


  15년 전 100m 대심도를 트라이믹스 기체로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다녀와 11 기압 클럽을 만들던 시간들, 11박 12일의 멕시코 수중동굴 다이버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동굴다이빙협회 회원이 되던 날, 두 가지 모두 몸과 마음속에 진하게 여운으로 남아있는 '희로애락 총합' 행복한 추억과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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