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 그룹 비서실과 다이버
For some time, my body stayed at work, but my soul was drawn to the ocean.
주말, 휴일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비서실 생활에서 그래도 바다로 갈 엄두라도 낼 수 있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한나절 정도이다. 크리스마스, 석가탄신일, 설날, 추석 등 명절 공휴일은 언제나 해외출장 일정이 잡혀있어서 오히려 시간 내기가 더욱 어렵다.
폭우 속을 뚫고서라도 토요일 오후는 공항으로.
토요일 11:40,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혼잣말로 "먼저 점심 먹으러 갑니다"라고 힘껏 소리친 후,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회사 옆 주차장으로 일단 냅다 달린다. 차 안에서 양복을 벗고 사복을 갈아입고 운전대 앞에서 1분 정도 고민한다. 이러다 발각되면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다는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한다. 99% 탄로 난다고 봐야 한다. 부서 모든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앉아있는데 혼자 자리에 없다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 아닌가? 외근 나갔다가 "퇴근시간쯤 전화하지 뭐"라고 합리화하면서도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깨닫고는 거의 자포자기 모드로 차를 출발시킨다. 그런 마음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발 비행기를 탔다. 자동차가 물에 잠길 정도의 폭우기간에도 쉬지 않았다.
늘 그랬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야 하니 18m 이하 얕은 수심으로 다이빙 2회만 하고 몸을 물에 담갔다는 사실에 만족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일요일 아침 첫 입수를 한다. 그러나 제주도 30m 수심에 피어난 '백송'이나 한계창 연산호 밭을 보는 순간 내일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바로 즉시 깊은 바닷속으로 몸을 담근다. 당연히 잔류 질소 수치를 급격히 증가하고 당일 마지막 비행기조차 탑승할 수 없게 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 2달째 매주 주말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월요일 제주발 김포행 첫 비행기를 타기는 했지만 김포공항을 빠져나오면 이미 아침 8시 반이고 월요일 출근시간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 겨우겨우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언저리이다. 출근시간이 8시이니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이다. 그룹 비서실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전통과 규칙이 하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출근시간은 어길 수가 없다. 1분 1초라고 늦으면 비서실을 떠나야만 한다. 벌써 3번째이다.
나의 책상은 ‘결국’ 창고 속으로 사라졌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50여 명의 부서원들 눈이 일제히 쏠림을 온몸으로 느낀다. 냉기를 넘어 한기까지 느껴진다.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갔다. 앗! 책상이 없다. 후배가 나지막한 귓소리로 "선배, 부장님이 책상과 짐을 정리해서 밖에 내놓았습니다.", "상황이 많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아무 소리 마시고 빨리 외근 나가셨다가 사무실에 들어오지 마세요", "어떻게든 저희들이 부장님을 설득해 볼게요!"
그날 결국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했고 한동안 매일매일 '반성과 사과'로 이어지는 하루 일과가 2-3달이나 이어졌다. 물론 용서는 되지 않았고 그저 잊힌 기억으로 더 이상 거론이 되지 않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비서실 직원의 경력관리상으로는 거의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주홍 글씨가 칠해진 것이다.
물속에서 잠깐이라도 호흡기가 없어졌을 때와 사무실에서 책상이 사라진 모습을 보았을 때, 엄청난 당혹감은 그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어쩌면 둘 다 '생존'에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치명적인 박탈감’과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는 스쿠버다이빙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바닷속으로 항상 향하고 있으니...... 꿈속에서나마 바다와의 만남이 계속해야만 한다. 난 다이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