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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계학 서설 II Dec 06. 2024

#2 나의 아들! 삶의 또 다른 여정

브롬톤 미국 서부 '천사의 도시' 여행기

  ...(‘나의 삶’ 글 중 아들 편_중략)...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 손에 이끌려 느닷없이 낯설고 입에도 맞지 않은, 결국은 17년이란 긴 외국생활을 시작했다. 말은 아들 조기 유학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집사람과 나의 해외유학 생활이란 바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아내는 6개월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영어교육(TESOL)'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나도 ESL과정을 다니면서 대학원 입학을 했고 그럭저럭 현지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은 사정이 좀 달랐다. 언어는 물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던 그 아이는 영어라는 큰 장벽에 부딪쳐 마침내 언어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탈모까지 겪어야 했다. 기간이 1년 남짓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 입학 후, 캠퍼스 운동장을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 속에는 그때의 힘듦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물론 그 이후에는 색소폰, 트롬본 주자로 중. 고등학교 밴드부 활동도 하고 공부도 곧잘 해서 시애틀지역의 8 학군?이라는 벨뷰로 이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경제적 부분에 불과했지만 그에게 지원과 응원을 아낌없이 보냈다.


  이번 기회에 '부자의 정'을!

  아들과 1년 반 남짓 같이 살다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고 그는 엄마와 함께 본격적인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교육 관련 주변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전형적인 한국적 사고로 신축 타운하우스를 구입하여 이사까지 단행했다. 결국 아들은 초, 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졸업했다. 군대 복무를 위해 2년, 1년 정도 한국 직장 생활을 제외하고 20여 년을 부모 중 한 사람과는 떨어져 살아왔다. 그에게는 어쩌면 엄마, 아빠가 모르는 좋게 얘기하면 자기애와 강한 독립심 그보다는 걱정을 좀 담아서 표현한다면 '외로움과 고독'이 마음깊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이제 군대도 다녀오고 경제적으로 이미 독립한 아들과 정답고 솔직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지난 세월 동안 몸으로 부딪치며 쌓아 온 '부자의 정'이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아예 더욱 어렵지 않을까? 집안 전체를 놓고 보아도 자손이라고는 고작 그 아이뿐이라 의논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더욱 문제이다. 어디서부터 어떡해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아들이 예약해 준 엘에이 숙소는 참 훌륭했다.

  그래서 겨우 생각해 낸 묘안? 이 '1~2일만이라도 먹고 자고를 함께 하면 어떨까?'부터 시작해 '시간이 허락한다면 4~5일 정도 함께 여행을 해 보면 더 좋지 않을까?'로 까지 생각이 발전했다. 역시 현실은 생각만큼 도와주지 않았다. 아들은 점점 더 자기 삶에 시간을 투여할 수밖에 없었고 예상조차 못한 역병시대의 도래로 원천적으로 오고 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 사이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영주권자 green card holder에 이어)가 되었고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도 생겼다. 지난 세월의 격차도 따라잡지 못했는데 이제는 현재와 미래에서도 '부자의 정'을 만들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 홀로, LA다운 타운역을 출발하지만!

  해답이 안 보일 때는 일단 부딪쳐 보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나쁘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아들 집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1주일 동안 오전, 오후에는 수영, 20km롸이딩 그리고 여행 계획을 짜면서 보내고 매일 하루도 안 빼고 저녁을 같이 했다. 아들이 졸업한 대학을 방문한 그날이 마침 Home Coming Day라 대화 주제를 하나 더 늘려주는 운도 좀 따랐다. 미국 서부, 알래스카, 캐나다 로키 마운티어, 다시 미국 서동부 횡단, 그리고 남미 아르헨티나 설타 고산 구름열차 등 미주 대륙 8개국 24개 도시를 80일 동안 360도 완전히 한 바퀴 도는 일주 여정을 점검하면서 짜증도 내고 약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간 상호 이해 폭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중간중간 할머니 포함 모자간 가족관계도 다시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았다.

아들이 공항에서 숙소, 숙소에서 엘에이 다운타운역까지 데려다주었다.

  결국 여행은 아빠 혼자 배낭 메고 브롬톤(자전거)을 끌고 혼자 떠나지만 앞뒤 동선을 사전, 사후로 점검해 주는 아들이 있기에 든든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수 차례에 달하는 문자, 카톡, 전화 통화 등 반 강제적인 소통을 할 수밖에 없고 수도 없이 발생하는 예측불허의 시행착오에 '희로애락'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분명히 가족임을 느낀다. 그래!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린 여전히 아들과 아버지 사이다. 30여 년 동안 나누지 못한 많은 얘기들이 분명히 있지만 조금씩 조금만이라고 온&오프 이벤트를 통해 대화로 메꾸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결국 여행은 한국 떠나기 전 상황에서 달라짐 없이 ‘나 홀로’ LA 다운타운 역에서 암트랙(Amtrak)을 타고 미쿡 서부해안 열차여행을 시작했다.


2022년 9월 25일, 알래스카 휘티어 가는 배안에서

 #나홀로 #브롬톤여행 #대륙간열차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역병시대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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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 이제야 여행 계획(‘21년 12월), 사전준비와 답사(’ 22년 2월-4월)부터 실행(‘22년 9월 14일-11월 14일)까지 ‘기록&보관한 ‘ 글과 사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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