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 그룹 비서실과 다이버
수심과 다이버의 공기 소모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8m 보다 얕은 수심에서 활동을 하는 초급 다이버인 경우 30분에서 40분 정도 물속에서 체류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짧은 시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물가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입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면 실제 물속으로 입수하기까지는 최소한 6-8시간 이상은 필요하다. 또한 1회 다이빙 후, 물밖에서 최소 60분 이상 잔류 질소를 배출하는 강제 휴식시간까지 가져야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1일 2회 정도 다이빙을 하기 위해서는 한나절은 꼭 필요하다.
동해, 서해 정도는 새벽부터 서두른다면 일정상 밤늦게 집에 돌아올 수 있겠지만 남해, 제주도, 울릉도, 독도인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이동시간만 반나절이 필요하고 1일 2회 다이빙 후엔 24시간 내에 비행기를 탑승하면 안 되는 다이빙의 불문율에 의해 1-2일 정도 숙박이 필요하다. 따라서 해외투어는 국내 투어의 2-3배 정도 시간적 여유가 요구된다. 자동차, 비행기, 배 등 여러 가지의 교통수단을 타고 다이빙포인트로 장시간 이동한 점을 생각한다면 1일 2회 정도의 다이빙만으로 만족하는 다이버는 그리 많지 않다. 초급 다이버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초급 다이버일수록 물속에서 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는, 긴 호흡 활동 이외에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중성부력'이란 다이버의 A to Z 기술을 완전히 익히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초급다이버일수록 물속에서 균형을 못 맞추어 '허우적거림'을 포함해서 몸의 동작이 커지고 움직임도 많고 짧은 호흡을 지속하다 보니 당연히 공기는 2배속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물속 체류시간은 줄고 아쉬움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이빙 회수를 늘리려고 하고 투어 일정은 점점 길어지게 된다. 역설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초급 다이버일수록 더욱 시간이 많이 필요하단 말이다.
회사에서 가장 바쁜 직급은 '대리'이다. 대리는 '대표이사'의 준말이란 농담이 이를 반증한다. 대리 중에서도 과장 진급을 앞에 둔 연차가 처리해야 할 업무량도 많고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감도 크다. 26개 가족사(계열사)의 홍보업무도 관리, 조정해야 하는 그룹 비서실 생활은 같은 직급이라도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06 to 24 일상, 주말과 휴가는 자진 반납하던 정확히 그 시절, 다이빙을 시작했으니 매일매일 4-5시간 수면시간 동안이나 꿈속에서 물속을 헤매고 다니곤 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다이빙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해, 동해, 남해 등 당일 일정은 장시간의 왕복 운전시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낚싯배, 파랑, 너울. 빠른 조류 등 다이빙 수중환경이 초급 다이버에겐 너무나 가혹해서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1박 2일 제주도 일정 또는 2박 3일 이상의 해외 투어만이 '소망'이었다.
주 52시간, 시간당 1만 원의 최저임금, 저녁 있는 삶, 주말 휴식, 다양한 취미활동 모임,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직업 강사들-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한다. 그 시절, 딱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지금은 당연한 그 모든 것 중 1달에 1번만 주말을 포함해서 1박 2일의 여유시간이 필요했다. 2박 3일이 주어진다면 영혼도 팔 수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