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 그룹비서실과 스쿠버 다이빙
'다이버는 돈, 직업, 부인은 없어도 되지만 시간이 없으면 안 된다'란 다이버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스쿠버다이빙이란 레포츠가 '물'이란 절대적인 자연 변수를 얻기 위해서 공간적인 이동에 '시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육지와 달리 평소 익숙하지 않은 수중세계에서 '공포'와 '두려움'없이 지내기 위해서는 마음적인 여유-누적된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시간이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요즘은 전문화와 분권화가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고도성장기'의 기업은 '그룹'이란 항공모함 전단과 같은 중앙집권적이면서 일사불란한 통제와 관리를 위하여 웬만한 규모의 기업이라면 통칭 '그룹 비서실'의 역할을 하는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취미생활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고 '저녁시간'을 갖는다는 말조차 생소했던 그때는 20만 다이버 시대와는 기업생활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말 없이 '06 to 24'였었다. 그렇지만 '취직 준비'의 고통도 '인원감축'이란 두려움도 없었으니 청춘에게는 살만한 세상이었다. 다만 다이버에겐 '죽음'이었다. 첫 다이빙 교육을 마치기 위해서 해양생물학, 해양물리학 등 이론교육을 위한 8시간과 제한수역 교육 반나절 2회, 그리고 1박 2일의 해양실습시간이 필요했다. 샐러리맨이라면 더욱이 그룹 비서실 소속이라면 풀기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였다.
바하마의 투명한 물빛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는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고 다이버가 되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했다. 많이 해 왔던 '짧은 시간에 속성'으로 '원하던 결과'만 얻는 그 방식이다. 그에 맞는 교육단체와 장소를 찾는데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물론 정말 바쁘기도 했다. 1년 365일 중 250일이 해외출장 또는 국내 출장기간이었다. 하루의 업무시간은 여전히 주말 없이 '06 to 24'였다. 국내엔 이를 해결할 단체도 선생님도 없을 거라고 아예 결론을 내고 찾지도 않았다. 무조건 해외출장 겸 여름휴가기간 내에 왕복 일정 포함 3박 4일 안에 초급 다이버 교육과정을 마쳐야만 했다. 그래서 장소는 필리핀 보라카이-출장지 홍콩, 교육단체는 짧은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체계적인 교육내용과 System을 가지고 있던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for Diving Instructors)란 단체로 결정했다. PADI OpenWater Diver과정은 만족스러웠다. 물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2박 3일 교육과정 동안 제한수역 교육도 해양에서 이루어진 덕분에 10 깡 다이버가 되었다.
2년 동안 Advanced Scuba Diver은 NAUI(National Association of Underwater Instuctors)에서 Rescue Scuba Diver와 DiveMaster는 다시 PADI에서, Diving Assistant Instructor와 OpenWater Instructor(OWI)는 SSI(Scuba Schools International)에서 자격증은 받았다. 물속과의 만남은 100회를 훌쩍 넘겼다. 레벨별 교육과정과 다이빙 투어를 위해 최소 1박 2일에서 4박 5일이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여름휴가, 월차&연차는 물론 정시퇴근은 꿈같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었다. 결국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몸과 머리' 모두 혹사해야 하는 업무를 스스로 선택해서 비공식적인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그렇게 얻은 황금 같은 시간 동안 오전은 다이빙 교육을 받고 오후와 밤, 그리고 새벽엔 회사일을 하는 '주경야독'생활을 이어 같다.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던 프로젝트를 그런 방식으로 5개나 해결하고 나서야 '스쿠버강사'자격증과 함께 나름대로 물속의 무중력과 생각의 여유, 그리고 몸과 마음의 자유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를 얻을 때 잃음을 준비하고 슬플 때는 즐거워질 생각만 하라고 했던가? 몸과 마음은 물속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 그리고 무조건적인 짝사랑으로 매일매일 만날 수 없고 접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