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이해기/김만희
MZ세대와의 소통은 ‘지석진’처럼
90년대 초, 대한민국은 X세대의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386세대(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다니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로 불린 新정치 세력들이 이미 기성세대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20대 대학생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정치보다는 사회‧문화에 관심이 많고 저축보다는 소비를 추구하는 모습이었다. 이 새로운 인류세대에 기성세대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미지의 수 ‘X’를 붙였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데뷔와 동시에 전국을 강타했고, 94년 아모레의 남성화장품 ‘트윈엑스’는 김원준, 이병헌의 상의탈의한 모습의 멋진 TV광고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처럼 자유롭고 새롭고 도전적이었던 X세대는 2000년대 들어서도 소비 고급화의 주역으로서 해외 럭셔리 제품, 외제 자동차 소비를 추구하고 해외여행 활성화를 주도하는 등 뉴트렌드의 주축세대로서 대한민국 소비의 핵심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들이 20대였던 90년대에서 30여 년이 지난 지금, X세대는 45~56세(65년~75년생 기준)로 사회에서 팀장급 이상의 젊은 중년이 되었다. 그런데 20대의 도전정신과 30대의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여유 가득한 40대가 된 이들이 요즘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도무지 MZ세대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MZ세대들은 이 X세대들을 ‘라떼’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피하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X세대의 X는 ‘부정적인 의미의 X’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서태지와 아이들>
‘90년대 생이 온다’에는 안타깝게도 90년대 생이 없다
X세대가 MZ세대와의 소통을 어려워한다는 것의 반증으로, 2년 전 쯤 유행했던 ‘90년대 생이 온다란 책의 열풍을 들 수 있다. 아마 90년대 생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해해야만 하는 그 윗세대들이 책을 읽어서라도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과는 다르게, 역설적이게도 정작 90년대 생은 그 책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유튜브에 있고 인스타그램에 있으며 틱톡에 있었다.
90년대 생들의 문법이 디지털인데,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꼰대 인증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나도 읽었다. 책장에 고이 꽂혀있다. 얼른 중고서점에 팔고 싶다). X세대들이 그들을 이해하려면 ‘90년대 생이 온다’ 한권으로 끝낼게 아니라, 그들의 놀이터인 SNS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소통방식과 놀이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386세대가 X세대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여 받아들이고 베풀었던 것처럼 X세대도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X세대들, 특히 잘 나갔던 그들은 본인들이 주역이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그들의 방식을 MZ에게 주입하는 것 같다. 아마 본인이 주역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본인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기는 걸까?
팔로워 2백만 명의 ‘지석진’, 그는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다
잘 알려진 연예인 ‘지석진’은 66년생으로 현재 55세이다. X세대의 초창기 연예인으로서, 인기 예능 런닝맨에서는 왕코형님으로 알려져 있으며, 얼마 전 유재석의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프로젝트 그룹 ‘MSG워너비’의 멤버 ‘별루지’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평상시 그의 모습을 보며 단순히 런닝맨이 외국에서 인기가 많으니 해외에서 팬들이 있겠거니 하고, 틱톡에서 가끔 그의 영상을 보며 ‘참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가수라니? 정상급 뮤지션들도 떨어진 오디션인데 약간 무리수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시기에 정식 음반을 취임한 가수 출신이었다. 예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무대에서 혹평을 받기 전, 지석진의 앨범 소개가 나오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심지어 데뷔앨범에는 ‘난 알아요’라는 곡도 있었다.
이러한 재미있는 이력을 가진 지석진의 SNS채널 구독자 수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의 유튜브 채널인 ‘지편한 세상’은 현 구독자 37.6만 명이며, 틱톡은 2M(200만 명), 인스타그램 계정은 무려 266.8만 팔로우를 기록 중이다(참고로 동일그룹 멤버 중 이슈성 높았던 배우 이동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30.4만 명으로 2배나 많다).
평상시 그의 콘텐츠를 보면 부담 없이 오버하지 않고, 일반인들의 눈높이에서 재미있는 이슈를 꺼내어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는 1주일에 2~3회씩 정기적으로 콘텐츠를 올리고 채널별로 다른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단순히 콘텐츠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댓글에도 정성스레 답변을 달고 소통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강화한다.
지석진의 SNS 소통역량을 보면서 앞으로 X세대들도 그처럼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MSG워너비 발탁은 김태호 PD의 치열한 고민 끝에 둔 신의 한수였을 것이다. 지석진의 별루지가 MSG워너비의 인기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는 ‘알고 있었다’.
<지석진 인스타그램>
가전제품 광고 BGM이 된 ‘COME BACK HOME’의 서태지, 그도 바뀌고 있다
얼마 전 집에서 청소를 하는 데 무의식 중에 TV에서 ‘컴백홈’이 흐르자 눈길이 절로 갔다. 태지 마니아로서 살아온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멜로디와 흥얼거림은 내 DNA에 박혀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음악의 정체가 삼성전자 가전제품 광고의 BGM인 것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서태지의 노래를 가전제품 광고에 쓸 수가 있었지? 이 기획을 서태지가 승인했다고?
나에게 서태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기존 권위에 순응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본인의 창작물에 대해서는 엄청난 보호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TV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게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도무지 서태지스럽지 않았다. 그는 신비주의와 더불어 음원조차도 쉽게 사용을 승인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굳이 해석하면 코로나 19로 바뀌어버린 라이프스타일을 노래 속 가사인 ‘IN THE PLACE TO BE’로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삶과 가전이 맞 닿아있다는 취지로 승낙했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존 서태지의 대중문화 대화법과는 달랐다.
그렇다. 그도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인정하고 본인의 음악을 이제는 본인 의도가 아닌 대중이 해석하게끔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한 고민을 하며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가고 있진 않은지 나 역시 고민해 보았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집단. 기성세대를 거부하며 그들과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신세대…. 우리는 한마디로 골치 아프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 집단을 미지의 ’X‘, 거부의 ’X‘의 의미를 부여해 ’X세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트윈엑스 광고를 기획했던 동방기획의 한 담당자는 미지의 X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X세대가 부정의 X가 아닌 미지의 X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욱 고차원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노력을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에서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