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는 거야, 손발 오그라들면

by 서린

작년인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맥락이었다.


자신이 썼던 글을 읽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텐데 그러면 잘하고 있는 거야. 오그라들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봐. 오그라든다는 건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왔다는 표시인데 그렇다면 그 글을 쓸 때와 다르게 지금은 자신에게 변화가 있다는 뜻이야. 시야가 바뀌었다고 보면 돼. 그 변화를 성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야. 그러니까 예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손발이 오그라들면 이렇게 생각하면 돼. 아, 내가 변했고 성장했고 자랐구나. 그러니까 자기가 쓴 글을 보고 손발이 오그라들면 잘하고 있는 거야.


나는 어렸을 적에 그나마 숙제로라도 쓴 일기를 찢어버리고는 했다. 이런 식이었다. 숙제로 조금 쓰다가 말기를 반복했는데 일주일치를 써놓고는 얼마 있다가 또 일기를 써야 되면 앞에 썼던 내용을 찢어버렸다. 썼던 일기를 읽으면 쑥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일기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찢거나 버리기 일쑤였고 때문에 어렸을 적에 썼던 글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게 참 귀한 기록이었다는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깨달았다.


글쓰기 수업을 담당하면서 내가 어릴 적에 한 실수를 학생들이 똑같이 하게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이 흩어지지 않도록 노트 한 권에, 자필로 쓰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학생들이 쓴 모든 글이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부족한 면이 있고 다듬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썼든 간에 스스로 생각하여 진심으로 쓴 글이라면, 맞춤법이 조금 틀리든 글씨가 조금 삐뚤빼뚤하든지 간에 귀한 글인 것은 맞다. 그리고 그 글들은 곳간에 양식이 쌓이는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미래의 어느 날. 학생들이 자신의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쓰기 공책에 잠깐 한눈팔 수 있기를. '아,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렇게 썼구나'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를. 내가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려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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