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눈물로 시작했던 그 반. 학생들 모두 첫 시간에 말한 내용을 썼을까? 공책을 하나씩 펼쳐서 읽어봤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학생들 중 절반은 그때 꺼냈던 이야기를 썼고 절반은 다른 내용을 썼다. 절반의 아쉬움. 자기감정을 꺼내서 앞에 펼쳐놓고 그대로 바라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기야 나도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건 몇 년 안 됐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게 이런 거다.
나도 내 감정에 꽤나 허덕이던 사람이다. ('사람이었다'라고 쓸까 살짝 고민했다. 이렇게 썼다가 언젠가 다시 허덕이면 난감해지겠지) 어렸을 때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때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고 어떤 때는 수치심이나 자괴감에 치를 떨었다. 그러다가 그게 깊어지면 우울에 눌리고 깔렸다.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깊게 들어갔다.
감정이 신호였다는 건 아주 긴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도로 위 신호등처럼. 어떤 감정이든 스스로를 보살피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깨달았다. 후회나 슬픔의 감정. 그 감정들은 신호일 뿐 뒷면에 진짜 이야기가 있다. 학생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감추고 숨기고 피하기보다는. 그래서 절반이 아쉬웠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글쓰기 공책을 돌려줬다. 첨삭의 시간. 첨삭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다. 해당 학생이 자신의 글을 읽어준다. 다른 학생들은 그 내용을 귀 기울여(내가 잔소리로 기울이도록 돕기도 한다) 듣는다. 이 과정까지 끝난 후에 묻는다.
"내용 이해가 잘 됐나요?"
이 질문을 굳이 하는 이유는 이해 없이는 공감도 없기 때문.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한 번 더 읽어준다. 나는 한 문장씩 또박또박 끊어서 읽는다. 그러면서 표정이나 분위기를 계속 살핀다. 이해가 안 되는 단어나 문장이 나오면 누군가의 표정이 움직인다. 혹은 고개가 갸우뚱하는 찰나가 눈에 들어온다. 문장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만약 손질이 필요한 문장이라면 칠판에 써서 이렇게 고치면 또 어떤 느낌인지 물어본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바로 넘기지 않는다. 학생들이 글을 쓰면서 자주 헷갈릴 만한 것이라면 즉석에서 문제를 만들어 물어본다. 퍼즐 조각을 이것저것 맞춰보는 것처럼 표현들도 바꿔본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레 첨삭이 된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 엊그제 60분 동안 2명 반을 했다. ('반'이라고 한 건 세 번째 학생 글의 절반까지 했기 때문) 그 반의 총인원은 6명. 그래도 이 인원이니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런 방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 꼭꼭 씹어서 넘겨야 그 맛을 안다. 그리고 이 맛을 알아야 글쓰기에 흥미가 생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