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부터 글쓰기 수업을 다시 담당하게 되었고, 겨울방학에 접어들면서 전체 과정을 어떻게 구성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그 고민에 도움이 됐던 책이 바로 <이오덕의 글쓰기>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글쓰기 수업 운영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책의 핵심을 이렇게 이해했다. 기교가 아니라 진심이구나. 이오덕 선생께서 몇 편의 글을 예시로 들어주셨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 잘 쓴 글들은 내용과 분위기는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내 감정이 움직였다. 내용이 쉽게 이해됐고 글쓴이의 마음에 공감이 갔다. 못 쓴 글들도 내용과 분위기는 모두 달랐지만 동일한 약점이 있었다. 이해가 어려웠다. 이해가 어려웠기에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자신이 글을 얼마나 기교 있게 잘 쓰는지 보여주고 싶었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글이었다. 자기 자랑을 하고 싶은 글이었다. 자신만 생각하면서 쓴 글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에 있다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이해를 못 하면 왜 자신처럼 생각하지 못하는지 그 탓을 할 것이다.
나를 아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앞에 있다면 그 마음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말 한마디, 눈짓 하나도 다를 테니까. 글쓴이가 글을 읽을 '나'를 생각해 주었는지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만 읽어봐도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독자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썼다면 고민이 깊었을 테니까.
이렇다면 내가 글쓰기 담당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은 간단해진다. 내가 독자가 되면 된다. 읽고 잘 이해가 되는지 공감이 되는지 말해주면 된다. 그리고 학생들을 모두 작가이자 독자로 초대하면 된다.
잘 이해가 되나요?
공감은 되나요?
이해가 안 되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어가 어렵거나 문장이 너무 길거나. 혹은 가깝게 있어야 할 문장 성분들(명사, 부사, 형용사 따위)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맥락 없이 섞여 있거나. 공감이 안 되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와 너무 동떨어진 소재이거나 작가가 글을 쓸 때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을 안 해줬거나. 혹은 그저 빨리 써서 치워버리고 싶은 '숙제'가 됐거나.
글을 쓰기 전에 가장 먼저 '진실된 이야기'부터 끌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글쓰기는 '숙제'가 될 테니까. 그래서 각 주제별 첫 시간은 무조건 '말하기'로 시작한다. 6~9명 정도 되는 학생들 이야기를 듣고 묻고 하다 보면 한 시간은 후딱 간다. 잘못하면 시간이 부족하다. 말을 하면서 활기가 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가 있고 들을 때도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를 새롭게 기억한다.
글쓰기는 두 번째 시간부터 시작이다. 첫 시간에 말하면서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초고를 쓴다. 공책을 펼치고 오늘의 날짜부터 적는다. 교실에는 연필을 사각거리며 글을 쓰는 소리만 남는다. (물론 중간에 열리는 입들이 있는데 잔소리로 자물쇠를 채운다. 아, 물론 그 자물쇠를 기어이 푸는 학생들도 있는데...)
초고가 완성되면 글쓰기 공책을 걷는다. 그리고 첨삭을 한다. 맞춤법, 띄어쓰기, 단어, 문장, 문단 나누기, 문맥 등을 살핀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집요한 독자가 된다. 각 학생의 글을 두 번 정도 읽어보고 의견이 있으면 따로 써 준다.
세 번째 시간에는 첨삭 내용을 바탕으로 글쓰기에 필요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네 번째 시간에는 각 학생이 쓴 글을 읽으면서 나눈다. 이렇게까지 하면 주제 하나가 끝이 난다.
위 단계를 거치면 글 한 편을 쓰는 데 약 4주가 걸린다. 사실 과제로 내주거나 몰아치듯 하면 세네 편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양을 채우려고 쓰는 게 아니니까. 자신을 더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게 하자는 거니까. 자신에게 진실되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진심이어야 독자에게도 진심일 수 있다.
진심은 가까이 있다. 하지만 급하게 갈수록 그 길은 멀어진다. 천천히, 조금씩 다가갈 수 있도록. 담당교사인 나도 각 학생들의 이야기를 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주제가 각자에게 물들듯이 들어갈 수 있게끔 설계를 했다.
(글쓰기 수업 순서 요약)
1단계: 말하기
2단계: 쓰기(초고) *첨삭 진행
3단계: 쓰기(설명 및 퇴고)
4단계: 나누기(각자의 글을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