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황 발생
지난주 어떤 글쓰기 수업. 주제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시간. 주제는 '나에 대해서'였다.
잠깐 생각해 보고 자신을 소개하거나 설명해 주세요.
학생들이 하나씩 입을 열 때마다 혼돈의 문의 열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변도 있었고,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앞서 나온 답변에 연결해서 뭔가 또 다른 얘기를 던지는 학생도 있었다. 간단하게 표현해서 아무 말 대잔치에 점점 가까워졌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아닌데.
2. 고민
1학기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틀을 딱 정해서 던져줘야겠다.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쓰고 그 뒤로 내면에 대한 내용을 쓰는 식으로 틀을 잡아줘야 혼돈이 없겠다. 이렇게 하면 다른 화제로 튀어가지는 않겠지.
<이오덕의 글쓰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상황에 대한 답을 찾자는 의도는 아니었다. 글쓰기 책을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꾸준히 읽자는 의지였을 뿐.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풀어놓는 건 어떨까. 내가 예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1) 아이들은 머리로 이야기를 꾸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2) 말과 글로 하는 자기표현은 정서 도야니 심정 순화니 하는 따위의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고 키워 가는 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3)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코로 하지만 마음의 숨은 표현으로 쉰다.
내가 너무 틀을 잡는 것 아닌가. 자연스럽게 풀어가도록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해보자.
3. 일주일 후 같은 시간
여러분. 오늘은 초고를 쓰도록 할게요. 지난 시간에 말하면서 메모했던 내용을 참고로 해도 좋고, 새로운 생각을 써도 좋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글을 쓰면 됩니다. 비유를 해도 좋고, 장단점을 써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읽고 난 후에 여러분의 어떤 면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입니다.
글자 수는 기본적으로 500자로 설정을 해놓았습니다. 글자수를 제한해 놓은 것은 '저 다 써서 더 쓸 게 없어요'라는 반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고민을 해보는 시간인데 그 고민을 안 하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최소한의 장치를 해둔 것입니다. 글자수를 채우려고 고민을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될 테니까요. 만약에 300~400자를 썼다 하더라도 충분히 성의를 갖고 진심을 담아 썼다면 괜찮습니다. 아무리 500자를 넘어도 건성으로 썼다면 소용이 없어요.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쓰는 시간을 주었다. 각자가 자신의 글쓰기 공책으로 쑥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에는 모르겠다고 한 학생은 한 바닥을 다 채웠고, 어떻게 쓰면 좋을지 묻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울타리를 너무 좁게 쳐놓았었나 보다.
표현하고 싶은 숨구멍을 너무 막았나 보다.
틀도 결국 내가 내 기준에 맞추게끔 하는 것. 무언가 깔끔하게 내 의도대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마음이 앞섰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