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교실. 글쓰기 주제는 부끄러움이었다. 여기서 뜻하는 부끄러움은 단순한 창피함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순간이나 나한테 인사하는 줄 알고 답을 했다가 뒤를 보니 다른 사람이 서 있는 순간들에 느껴지는 종류가 아니라는 뜻이다.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 바를 깨닫는 순간 올라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15살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어려울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시간은 글을 쓰기에 앞서서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는 수업이었다. 아무래도 부끄러웠던 경험이라 꺼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나 보다.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니 조용했다. 기뻤던 일이나 성취에 대한 것이라면 바로 나왔을 것 같은데. 좀 더 쉽게 얘기를 꺼낼 수 있도록 질문을 바꿨다.
"생각 나는 게 있는지만 얘기해 주세요."
한 명씩 물어보기 시작했더니 있다, 없다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한 후에 내용을 바꾸어 다시 물어봤다.
"그 경험을 했던 때와 장소만 먼저 얘기해 주세요."
(한번에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게 보이면 더 간단한 질문으로 바꿔서 던진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답변을 하는 분위기로 만들어주는 것. 이렇게 해놓으면 그다음 이야기를 꺼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때와 장소까지 칠판에 쓰고 난 후에 각자의 경험담을 듣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여러 다양한 상황들이 있었고 누구나 겪었음직한 내용들도 있었다. 그저 창피했던 경험이었다면 좀 더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중학교 2학년 교육과정은 감정을 꺼내어 들여다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1 때는 자신의 주변과 자신, 2학년 때는 자신의 내면(감정), 3학년 때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도록 설계했다.) 감정들 중에서 부끄러움이 어쩌면 가장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대면하기 힘든 감정 중 하나니까. 그 감정이 느껴졌을 때 그냥 넘어가느냐 직시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학생들이 부끄러웠던 것은 부끄러웠다고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이번 글쓰기의 가장 큰 목표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