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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 기록 May 19. 2022

상상과 현실사이

제인 오스틴의『노생거 사원』


“어릴 적의 캐서린 몰런드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타고난 여주인공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 『노생거 사원』의 첫 문장이다. 여주인공답지 않은 인물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겠다는 작가 제인 오스틴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여주인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를 보여주는 『노생거 사원』은 나의 삶에 주인공이 되어가는 과정으로도 읽힌다.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주인공에 이르는 모습 말이다.     



캐서린은 열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선머슴처럼 자라지만 외모 격변 시기를 겪으며 용모와 행실이 단정하여 예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짐작할 수 있듯 여성이 적절한 교육을 받기 만무한 상황에서 캐서린이 적절한 소양을 갖추게 되는 건 다름 아닌 독서를 통해서다. 당시 18세기 영국에서 유행하는 소설들을 섭렵하고 고딕 소설 마니아 캐서린은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가 된다. 어엿하게 자란 열일곱 살 숙녀 캐서린을 좋게 본 마을의 부유한 인물 앨런 부인은 캐서린의 후견인이 되어 ‘사교계의 중심 온천 도시’ 바스로 데려가고자 한다. ‘마을에서 젊은 여성이 모험을 경험할 수 없다면 바깥에서’ 찾아야 하는 법. 그리하여 캐서린의 모험이 시작된다.                                            




온천 도시 , 바스bath




책이 상상의 보고라면 현실은 실전이다. 무도회가 열리는 바스의 사교계는 캐서린에게 새롭고 낯선 곳이다. 새로운 무대에 왔으니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캐서린이 바스에서 사귀게 된 첫 친구 이자벨라는 만나자마자 친근함을 표현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나눌 만큼 사교계에 익숙한 인물이다. ‘질척한 날씨에 저항이라도 하듯 한사코 만나 꼭 붙어 앉아 함께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 소설말이다.’ 이자벨라와 캐서린이 우정을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소설 읽기였다.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에게 후원을 받지 못한다면 대체 누구에게서 보호와 존경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상상력의 범람이니 하며 비난하는 일은 평론가들의 한가한 일거리로 남겨두자. 새로 나오는 소설마다 쓰레기 같으니 어쩌니 하면서 신문에다 대고 케케묵은 곡조로 왈왈거리게 내버려 두자. 우리끼리는 서로를 저버리지 말자. 우리는 상처 입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들은 세상의 어떤 다른 문학 기관이 내놓은 작품보다 광범위하고 가식 없는 즐거움을 주어 왔음에도, 어떤 종류의 글보다 폄하되었다. 자존심 탓이든 무지 탓이든 유행 탓이든, 우리의 적들은 우리의 독자만큼 많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소설 무대 정면에 등장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소설 읽기를 폄하하는 시선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그 시선으로부터 보호하는 벙법은 서로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독자를 향한 당부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소설은 역사나 다른 글 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자. 독자에게 하는 말이면서 스스로에게 주고 싶은 확신이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제인 오스틴을 나아가게 했다.           



한마디로 그냥 소설 작품이라는 것인데, 실은 여기서야말로 정신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 발휘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 그 다양한 면모에 대한 가장 기막힌 묘사, 생생하게 넘쳐흐르는 위트와 유머가 선택된 최상의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이다.           



18세기 당시 소설을 낮춰보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제인 오스틴이 소설에 대한 자부심이 가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오스틴 가족이 있다. 소설 애독자였던 가족들은 집안에서 큰 소리를 내어 작품을 읽었다. 제인 오스틴의 아버지는 낭독의 기술을 지닌 훌륭한 낭송가였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오스틴이 10대부터 소설을 쓰고 가족들을 위해 재밌고 위트 있는 작품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작품에 반영하고 즐겨 읽던 소설을 조금 다르게 써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재미를 제인 오스틴은 알고 있었다. 싱싱하고 당찬 목소리가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소설 읽는 여주인공, 캐서린  (영화 <노생거 사원>)

      


주인공 캐서린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대한 시선을 반영한다. 바스에서 만난 헨리 틸니를 향한 캐서린의 호감은 그가 소설 읽는 남자여서다. 반면 (비호감) 존 소프는 소설을 폄하하고 끔찍한 것으로 여긴다. 소설에 대한 옹호 여부가 캐서린의 우정과 사랑의 출발점인 셈이다.  틸니 남매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캐서린은 틸니 장군으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바로 그들이 사는 ‘노생거 사원’으로의 초대다. 단순히 저택이 아니라 과거에 ‘사원’이었다는 점에서 캐서린의 기대가 솟구친다. ‘노생거 사원!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이 단어는 캐서린의 감정을 최고의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노생거는 다른 무엇이 아닌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머물게 될 터였다. 길고 음습한 통로들, 좁은 방들과 폐허가 된 예배당을 날마다 접할 수 있을 터였다.’          



캐서린의 모든 기대와 상상은 그동안 탐독했던 고딕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노생거 사원을 대저택에 감금된 여인이 있고 악한이 사는 공포스러운 고딕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여기며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그곳에서 발견한 낡은 궤짝, 비밀스런 방 모두 캐서린의 탐색과 탐험의 대상이 된다. 두려움과 공포를 무릅쓰고 탐험할수록 알게 된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이곳은 엄연한 사원 아니었던가! 이곳의 살림 배치는 그녀가 책에서 읽은 것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노생거 사원은 캐서린의 상상을 극대화 하는 공간이면서 상상을 깨뜨리는 현실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노생거 사원



노생거 사원을 향한 공포와 호기심은 한편으로 틸니 장군에 대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 자녀를 기죽이며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틸니 장군은 캐서린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다. 캐서린의 두려움은 급기야 틸니 장군이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도를 지나친 상상을 부르고 이를 호감을 사고 싶었던 헨리에게 들키자 캐서린은 절망한다.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환상은 이제 끝났다. 캐서린은 완전히 꿈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그토록 목소리 높여 옹호했던 소설이 환상을 품게 했고 그 환상으로 인하여 곤란에 빠지게 되었다. ‘바스를 떠나기 오래전부터 무엇에 홀린 듯 열에 들떠 못된 생각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모든 것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거기서 심취했던 독서가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언뜻 상상은 유해하므로 정확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 상상을 부추기는 소설을 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지만 제인 오스틴은 소설이 만들어낸 상상만큼 소설 밖 현실 또한 공포스럽다는 것(노생거 사원에서 쫓겨남)을 보여준다. 소설을 피해 현실로 간다면 현실을 피하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할까?      



현실에서 제인 오스틴은 비혼으로 남았지만 소설 속 세계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행복한 결혼을 맞이한다. 노생거 사원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 캐서린을 쫓아 헨리 틸니가 찾아온 것이다. 청혼하기 위해서. 당시 결혼 하지 않은 여성은 경제적으로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 의지해야 했다. 상속은 여성에게 불리했고 결혼 이외에는 여성이 독립하기 위한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에게 여성의 불리한 현실에 맞서는 방법은 소설을 쓰기였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과 결혼을 소설 속 상상으로 이루어낸다.










영화와 문학 사이 




소설 『노생거 사원』에서 언급되는 『우돌포의 수수께끼』는 당시 유행한 고딕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고딕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상을 대화로 나누지만 영화에서는 캐서린의 꿈으로 나타난다. 꿈에서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노생거 사원에서 느끼는 공포와 겹치면서 캐서린의 환상이 극대화된다.      


노생거 사원에서 쫓겨난 캐서린은 탈니 장군을 아내 살인자로 의심했던 자신의 상상을  돌아보며, 다시는 그와 같은 공상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돌포의 수수께끼』는 캐서린이 헨리와 대화하는 매개가 되어 주었고 노생거 사원에 가는 길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캐서린을 곤란에 빠뜨린 것이다. 그리하여 책은 불타는 벽난로에 던져진다. 소설에 없는 영화에만 있는 장면이다. 


책에서 비롯된 상상을 벗어나 현실을 자각하는 캐서린. 책 화형식은 조금 과도해보이지만, 그만큼 캐서린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후 헨리와 결혼하는 캐서린.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현실 없이 상상이 없고 상상없는 현실은 심심하다. 상상과 현실 사이, 그곳에 우리 모습이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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