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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Oct 14. 2020

칭찬의 기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앞은 작지만 정다운 만남의 광장이다. 그 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쌍둥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다. 앗, 두 분이 쌍둥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 분들은 다섯 살 쌍둥이 손주들을 돌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이시다.


매일을 뵈오면서도 할아버지가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서 계신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늘 다리를 굽혀 쪼그려 앉으신 다음 손녀들을 양 무릎에 앉히고 눈을 맞추신다. 연세가 많아 아이들 돌보는 일이 여간 힘드시지 않을 텐데도. 늘 밝은 얼굴이시다.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젊은 엄마를 만만히 보고 낮추어 대한다는 느낌도 없다. 우리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저 "오빠야 왔네! 오빠야 안녕하세요. 우리는 오늘 소풍 가요!" 하는 식으로 정답고도 정중한 인사를 먼저 건네실 뿐이다.


오늘도 아이들을 차례차례 태워 보내고 조심히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드리려는데, 쌍둥이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애기엄마, 참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에요. 정말 기분 좋은 사람이야."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우리 사이에는 부지런히 아침 인사를 나눈 기억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내가 기분 좋은 사람이라니,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라니! 칭찬을 곱씹을수록 왠지 자신감이 붙고 걸음마저 경쾌해지는 것 같았다.


예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지만, 어쩌다 한 번 듣고 나면 이상하게 그 다음이 부담스러워지는 것이 바로 외모에 대한 찬사다.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려워진달까.

동안이시네요, 라는 말도 그렇다. 그런 말을 들으면 몹시 기쁘면서도 이 다음 만남에는 혹시 주름살이 늘진 않았나,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것이다.


외모라든지 나이라든지. 타고난 것,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 선의를 드러내려 했던 나의 작은 노력을 알아봐 준 할머니의 칭찬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건 매일 아침 소리없이 나를 지켜봐 온 사람이 건넨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나는 오늘 쌍둥이 할머니를 통해 적절한 칭찬은 한 사람의 온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칭찬에도 기술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쌍둥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닮아가고 싶은 멋진 어른이자, 진정한 칭찬의 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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