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편히 쉬었다 가세요.
삼송에 이사하고 딱 일 년쯤 되었을 때다. 우리 단지는 신 시가지와 삼송역의 경계에 있어, 적당히 걸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지만, 식당이나 카페가 모여있는 근생 시설과는 조금 멀다는 단점이 있었다. 2017년, 대형 복합 쇼핑몰 한 곳이 문을 열면서 그런 불편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정문 앞을 나와 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7-80년대의 풍경 그대로 남아 있는 구시가지 상권과, 창릉천변을 따라 형성된 옛 삼송'리' 마을의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쇼핑몰까지 가는 길에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로수들 뿐이라, 더운 여름에는 의지할 그늘도 없었고 우리가 살았던 기간 내내 건너편 주상복합이 무려 1,2,3,4단지까지, 순서대로 지어지는 바람에 늘 공사장을 곁에 두고 걸어야 했다.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걷고 싶은 길은 아니었던 길을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해도 사람 많은 대형 쇼핑몰에 가야 하는 구조였다고 할까? 그랬던 동네 상권에 처음으로 생긴 산뜻한 가게. 단지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생긴 가게였다. 카페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장사가 잘 되는 가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삼송동의 그 카페를 지켜보면서, 결국 장사도 사람의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친절하고, 부지런하셨던 사장님. 한마디 말에도 따뜻한 진심을 담아 건네시던 사장님 곁으로는 동네 아이들도 길냥이들도 문정성시 모여들었고 트렌드를 앞서가는 디저트 전문점이라던지, 고급스러운 커피 전문점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철 따라, 분위기에 맞게 내놓으시는 그 날 그날의 모든 메뉴는 정성이 듬뿍 들어간,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은 든든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우아하게 시작했던 가게의 앞 뜰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중고 장난감들로 채워졌고 여름이면 비눗방울 장난에, 뚝방 흙을 파고 노는 아이들로 매일이 난장판이었지만, 사장님은 매일 어질러진 흙을 다지고 누구든 언제든 쉬었다 가세요.라고 쓰여진 의자를 가지런히 고쳐 놓아두실 뿐이었다. 어느 즈음에는 누구도 사장님이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한다고는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동네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1인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을 염려하기 시작했고, 점심을 굶고 일하시는 사장님에게 음식 배달이 이어지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직접 싼 김밥부터 복날의 삼계탕까지. 사장님과 공간에서 받은 정성어린 위로에 대한 답례였으리라 생각한다.
사장님의 여름휴가로 카페가 문을 닫았을 때, 그 골목을 지나가 본 적이 있다. 창릉천을 산책할 손님들을 위해 영업이 끝난 시간에도 테라스에 불을 밝혀두시던 사장님. 카페가 있는 건물은 그 자리 그대로였지만, 사장님이 지키고 있지 않은 골목은 예전처럼 썰렁하고 으스스했다. 허름한 골목 풍경을 바꿔 놓은 건 산뜻한 신축 건물이 아니라, 저녁이면 불을 밝히고, 아침 일찍부터 쓸고 닦은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두는 한 사람의 반짝거리는 마음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최상급의 딸기가 듬뿍 들어간 봄 음료 딸기 라떼, 톡톡 씹히는 과육이 매력적인 한여름의 백향과에이드, 시그니처 메뉴인 마늘 과자와 밀크티, 하나 하나 직접 껍질을 벗기신, 자몽이 물보다 많이 들어있는 겨울의 자몽차. 한 번쯤 다시 맛보고 싶은 그리운 메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쩌면 나를 비롯한 손님들은 단지 음료 한 잔을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장님의 밝고 건강한 모습에 힘을 얻고 싶어서, 듬뿍 담아주신 음료에 특별한 단골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싶어서, 나를 격려해 주고 반겨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그렇게 가게를 찾았고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디 사장님이 너무 무리하시지 않기를. 그래서 오래 오래, 그 골목을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