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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그 해 여름, 노을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창 밖으로 노을이 보였다. 

진분홍색 노을이 신기하고 예뻤다. 


"하늘 좀 봐 너무 예뻐!" 


나의 말에 아이도 쪼르르 식탁에서 내려와 

밖을 내다 보고는 신기하다, 예쁘다 한다.


"우리 나가자!"


남은 설거지도 팽개치고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해는 넘어가고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우리는 서둘러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다.


창 밖으로 보았던,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희미한 주홍빛 구름 자락만 남아 있었다.

올해도 조상님 달력은 무섭게 들어맞아 

푹 꺾인 여름

시원한 밤 공기 속을

걷는다.


“이런 날씨에 산책은 정말 최고야"

다섯 살은 이제 이런 말도 할 줄 안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여름. 밤. 바람.

두 팔을 활짝 벌리니 가슴 속까지 시원했다.

엄마 따라 해보라며

두 팔 벌린 아이를 씽씽이에 태워 끌어 주었다.

그 자세가 '타이타닉' 의 시그니처 자세라는 것도 알려 주었다.

얼마만인지, 바람이 분다.

우리는, ‘좋다.’

‘좋다!’

‘좋다..’고

 여러 번 번갈아 말했다.

주원이 똥 마려워 급 산책 종료.

긴 열대야도 끝이 났다.

근 한달만에 온 집안 창문을 다 열어 놓았다.

사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없이

온 동네가 고요하다.

늘 울고 있었겠지만

올 여름 집 안에서 처음 듣는 귀뚜라미 소리가 반갑다.

오만 정 다 떨어지고 싫어질 뻔했던

여름이

새삼스레

이렇게 좋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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