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에 사는 즐거움
삼송 우리집 옆에는 북한산 줄기를 따라 한강으로 이어지는 크지 않은 실개천이 있었다. 처음 삼송에 집을 보러 왔던 날, 여름 녹음이 한창이던 천변 풍경도 이 동네에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였다. 북한산 자락에 가까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삼송'리'였던 시골마을에 오래 전부터 자연히 흐르고 있었던 작은 하천은 경기도청이나 고양시청은 고사하고 덕양구청 치수과 공무원들에게도 큰 관심사는 아닌 듯했다.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수풀 사이로 사람 한 두명이나 다닐 만한 길, 중간중간 몇 개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을 뿐 양방향으로 사람들이 다니기 좋은 넓직한 산책로라든지 야간 조명, 체육 시설, 편의 시설 같은 것은 부족했다. 밤이 오면 벌써 인적이 끊기는 작은 동네에, 더욱이 어두운 물가에는 아파트 근처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몇 외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분명 서울 시내에 있는 이름난 천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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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급격히 불어난 체중 감량에 힘쓰고 있을 무렵 나는 주말에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헬스장에 나갔다. 첫째, 셋째 주의 일요일, 한 달에 두 번은 헬스장이 문을 닫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집 앞 천변으로 새벽 조깅을 나섰다. 서늘한 공기 속에 조용히,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창릉천의 아침은 일찍이 내가 바랐던 넓직한 산책로나 울타리가 있는 나무 데크 길, 물가를 감싸고 있는 그 흔한 아스팔트나 축대가 없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조금 밋밋하더라도 수수하게 아름다운,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가진 누군가의 맨얼굴 같았다. 치수과의 하천 전문가들은 어쩌면 나보다 고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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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나 봄이 왔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유치원의 어항 만들기 수업에서 강제로 선물받은 금붕어 두 마리를 울며 겨자먹기로, 어느날 아침 어항 위로 떠오른 모습만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애지중지, 말 그대로 애지중지 돌보았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적당량의 사료를 뿌려 주고 산소 발생기도 없는 작은 어항의 물이 탁해지지 않도록 일주일에 한 번은 미리 받아놓은 새 수돗물로 고기들을 이사시키는 것이 붕어 집사의 할 일이었다.
남편이 실리콘 국자로, 매운탕을 덜듯 붕어들을 국물채 떠 세면대에 풀어놓은 사이 나는 물때 낀 어항을 깨끗이 닦고 떠다니는 똥을 치웠다. '심바'와 '무파사', 붕어 한 쌍은 우리 가족이 난생 처음으로 키운 반려동물이었다. 처음 그 둘을 데리고 올 때부터 당장에 방생할 생각부터 하고 있던 나는 차마 춥고 긴 겨울을 앞둔 가을에 그 둘을 내쫓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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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북한산 골짜기로부터 흘러나온 맑은 개울물에 '심바'와 '무파사'를 풀어주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심바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고 꼬리 힘이 좋았던 무파사는 쉴새없이, 쉴새없이 헤엄을 쳐 물살을 견디며 천천히 멀어져 갔다.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다. 졸졸 소리도 없이, 그닥 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던 낮은 개울물이 얼마나 부지런히, 세차게 흐르고 있었는지를. 사계절, 창릉천의 물이 투명하고 맑을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인공적이지 않아 더 아름다웠던 창릉천. 깊은 산 자락으로부터 맑은 물이 흘러 흘러오던, 그 천변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