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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일층 집을 좋아합니다

난생 처음 살아본 일층 집. 15층 아파트의 15층, 20층 아파트의 20층, 쭉 고층에만 살아왔던 터다. 최근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어릴 때는 기계 오작동으로 승강기가 층수를 제멋대로 오르고 내리거나, 도착해도 문이 열리지 않거나, 순식간에 몇 층 아래로 떨어지는 서늘한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엘리베이터에 탄 채 떨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하고, 높은 건물에 가거나 흔들리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으면 손바닥에 식은땀이 나고, 몹시 불안해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일 년간 살아본 일층 집에는 많은 단점이 있었다. 첫째, 말벌이 집을 지어 자꾸 드나든다. 둘째, 겨울에 춥다. 셋째, 여름에 습하다. 넷째, 습한 여름에는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잠을 청하고 싶지만 왠지 겁이 난다. 등등.


그렇지만 나에게는 장점이 더 많은 집이었다. 무엇보다 공포의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다닐 수 있으며, 타더라도, 혹시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더라도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 같아 덜 무섭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거실 창 밖으로, 주방 뒷 베란다로, 눈높이에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대로인 콘크리트 건물을 바라보는 대신, 겨울에는 가지만 남은 나무가 너무 쓸쓸해 보일 만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집이라서 좋았다. 실제로는 지하주차장 위에 지어진 집일 뿐이지만, 집 앞의 흙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꼭 땅 위에 지은 집 같아서, 그게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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