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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19. 2020

달리기가 느린 아이

나라는 사람

나는 머리를 허리까지 길렀습니다. 리본으로 묶거나 머리띠를 하면 예쁘기는 한데 머리를 감을 때는 성가십니다. 엄마가 머리를 자르자고 하여도 내가 싫다고 했습니다. 우리반 여학생들은 거의 다 머리를 기르고 있거든요. 머리를 감을 때는 엄마가 도와줍니다. 오늘도 엄마가 리본을 풀어 주고 샴푸를 묻혀 주었습니다. '머리냄새가 많이 나는구나.' 엄마가 말했습니다. 자주 감는데도 내 머리에선 유난히 머리냄새가 많이 납니다. 샴푸거품을 내면서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네 반 아이중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아이가 있는데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면 너는 어떡하겠니?"

나는 샴푸거품 때문에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쁘고 명랑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머리냄새가 나는 아이다, 기억해라.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다리를 저는 아이를 보거든  참! 나는 머리냄새가 나는 아이지! 하고. 그러면 그 아이들과 네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너의 자궁을 노래하라, 1993, 그린비


1993년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꽤 안전한 울타리였던 유치원에 비해, 처음 겪는 학교 생활은 마치 갑작스런 정글에서의 생존 게임처럼 느껴졌다.

일 학년 첫 체육 시간. 아찔하도록 높아 보였던 늑목 앞에 반 전체가 4열 종대로 쪼그려 앉았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맨 앞줄부터 한 사람씩 빠르게 늑목을 올라 정상에 오른 뒤, 반대편으로 다시 빠르게 내려와 다음 사람과 교대한다. 가장 먼저 늑목을 모두 오르내린 줄이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맨 앞줄에 앉아있던 내가 처음으로 늑목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 정상에 올랐고, 건너편으로 다리를 넘기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겁에 질리고 말았다. 같은 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들도 곧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빨리 해! 빨리 내려와! 애가 타는 외침이었다.

친구들의 응원과 야유를 받으며 다시 늑목을 내려오지도, 용기를 내어 건너가지도 못한 채로 나는, 마지막 순서의 친구들까지 모두 늑목을 올랐다 내려가는 동안 내내, 그 꼭대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매달려 있었다.


악몽같던 첫 체육시간이 끝나고, 나는 누구도 친해지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반의 대표 겁쟁이가 되었다. 같은 등교길을 오가며 며칠 사이 꽤 친해졌던 친구들마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그 날 늑목 위에서, 우리 반 마흔 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두 거뜬히 늑목을 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나 또한 스스로,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평범하지 못한 아이라는 걸.


그날 이후 나의 인생 목표는 어디서도 두드러지 않는 평범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무얼 잘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떤 것도 눈에 띄게 못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운동회의 달리기 시합이 있을 때면 나의 목표는 일 등도, 이 등도 아닌 여덟 명 중 팔 등, 단지 너무 쳐지지 않는 꼴찌가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꼴등은 맡아 놓은 당상. 아무래도 좋았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모두 결승선을 통과한 뒤에, 아직도 저 멀리서 혼자 뛰고 있지만은 않은 꼴찌이고 싶었다. 물론 길고 긴 학창 시절동안 그 소망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매년 , 새로운 친구들과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체육 수업 시간을 마칠 때마다 나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평균 이하, 나의 평범하지 못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모두가 기피하는 반장 노릇을 떠맡게 된 나는  줄의  앞에 서서 운동장 달리기를 시작했고, 전속력으로 뛰고 있으면서도  바퀴를   때쯤이면 서서히  끝으로 멀어지는 나에게 친구들은 '뒤로 달리기' 세계 챔피언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등속으로 달리는 친구들의 시점에서는 마치 내가 뒤로, 아주 빠르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어째서 그렇게 헐떡이는지. 심장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나의 뜀뛰기를 처음 본 어른들도 모두 의아해 했다. 이런 나를 안타까워하고, 꾸짖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허약한 신체는 얼마든지 계발될 수 있다는 믿음이셨다. 그 말씀을 믿고 뒤늦게 노력을 기울여 보기도 했지만 나의 달리기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고등학교를 마지막으로 체육 수업을 졸업하며 더이상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게 된 것으로, 나의 불행은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달리기는 나의 의지 부족이 아닌,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태어난 병 때문이었다는 것. 희귀성 질환을 가진 덕에 건강 보험의 산정 특례 대상자로 상시 진료비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뒤늦게 알게 된 그 두 가지 사실 중 어느 것도 반갑지가 않았다. 이제는 확실한 병명마저 알게 되자 내가 평범한 사람일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심지어 성인이 된 내가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멀쩡한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이 누군가를 기만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삶은 더욱 불행하고 복잡해졌다.




나는 오른손 손등에 눈에 띄게 큰 점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점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것, 보기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나를 여자로써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열이면 열, '그 점' 만은 가리거나, 빼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곤 했기 때문이었다.

내 달리기는 본 적도 없으면서. 고작 내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조심스럽게 호감을 키워보려던 상대일지라도,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 들면 나는 여지없이 도망치고 말았다.


남편은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기간동안 단 한번도 내 점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함께 하는 인생을 고민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외면했던 두려운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 저녁, 신천 먹자 골목의 한 고깃집에서 소주 두 병을 들이킨 뒤에 미뤄온 눈물의 고백을 하고 말았다. 나는, 나는, 달리기가 느린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엔 이미 늦어버린 고백이었을까? 학창 시절 내내 1등으로 달려온 그 남자는, 달리기가 느린 여자를 기꺼이 사랑해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곧 아이를 갖게 된, 더구나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 부부의 기도 제목은 단 한 가지였다. 이 아이만큼은, 빠르게 달릴 수 있을 만큼 부디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다행히 아이는 절반이라는 확률을 피해 건강하게 태어나 주었고, 어느덧, 오르막길을 단숨에 뛰어오르는 일곱 살이 되었다.




그랬다. 말하자면 나는 지독한 머리 냄새가 나는 아이였다. 덕분에 내 유년은 그렇게, 늘 고달팠다. 평범해 보이는 삶을 살게 되기까지, 비로소 내 아픔을 드러낼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나만큼이나 평범이라는 차가운 기준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눈여겨 볼 줄 알았고, 어떤 일은 노력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더라도 나보다는 낫지, 나보다는 달리기를 잘 할거야. 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장점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


올 봄, 동네 놀이터에서 늑목을 발견한 우리 가족은 너나 할 것 없이 다같이 그 위로 기어올랐다. 아이는 처음 보는 꽤 높은 늑목의 정상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쉽게 넘기 시작했고 나는 이십 육 년 전의 그 날,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었다. 바보같은 엄마가 아니라, 좀 더 용기 있고 멋진 엄마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너는 달리기가 느린 엄마를 둔 아이야. 기억해. 달리기가 느린 친구를 보거든 참! 우리 엄마도 달리기가 느린 사람이었지! 하고. 그러면 그 아이도 엄마처럼 너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걸, 깨닫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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