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걸로 해주세요, 제발
내 귀는 못생겼다. 유독 못생겼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업고 나가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복 있는 아이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복이 있을 팔자라니 마냥 좋은 줄 알았지만 뒤늦게 알았다. 그건 딱히 칭찬이 아니었다는 걸. 어른들이라고 해서 모두 영험한 관상가는 아니지 않은가? 귓불이 두툼한 아이에게 으레 하는 덕담이었을 뿐.
단정하게 쓸어올린 헤어 스타일에, 여성스러운 진주알 귀걸이가 잘 어울리는 날렵한 귓불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연애 시절에는 엄지와 검지로 귓불 끝을 살짝 감싸 쥔 채 남편을 바라보며, "나, 귓불 축소 수술 받아보면 어떨까?" 말해보기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가뜩이나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내구성도 형편없다. 먼지가 쌓이는 처마가 되어준 두툼한 귓불 덕분인지 내 귀에는 귀지가 잘 생긴다. 그 뿐이랴. 귓구멍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일차선의 시골길처럼 좁다. 어쩌다 혼자서 후벼보려 하면 공연히 상처만 날 뿐 영 쉽지가 않다.
어릴 적에는 다섯 살 많은 오빠가 귀를 파 주었다. 오빠는 책상 위 인버터 스탠드의 목을 쭉 뽑아 가까이 대고, 다양한 사이즈의 귀이개로 든든한 연장을 갖춘 뒤 탐험에 나선 인디아나 존스처럼 내 귓속을 파내려갔다. 먼저 귓바퀴를 한 번 시원하게 긁어주고, 잔 부스러기들이 모여 있는 이갑개강을 지나, 저 깊숙한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이야말로 걸출한 귓밥들의 소굴이다.
어쩌다 왕건이(a.k.a 왕 건더기)를 발견해 원형 그대로, 깨트리지 않고 건져올릴 때면 오빠는 열 자 대어라도 낚은 낚시꾼처럼 좋아했다. 벙커에 은신하던 귓밥 두목을 처리하고 골짜기에 숨어 있던 잔당들마저 처치하고 나면 묘한 성취감과 재미마저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한 지금은 남편이 그 흥미진진한 수고를 물려받았다. 그 시절의 인버터 스탠드는 고장이 나 내다 버린 지 오래다. 귓밥을 파는 날이면 남편은 깊은 광산에라도 들어가는 광부처럼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이번에야말로 머리에 쓰는 후레쉬를 사야겠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나는 후레쉬가 달린 모자를 주문하는 대신, 기꺼이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켜고 정확한 각도를 유지하는 데 힘쓴다. 한때는 꽤나 팔이 아픈 일이었지만 다행히, 점점 수월해진다. 휴대폰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면은 처음 본다고?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연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감고 귀를 맡기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의 귓밥은 그 정도 애교로 넘길 수준이 아니다. 연인에게 이 추잡스런 귓구멍을? 절대 안 될 말이다. 변명이 아니라 나는 하루 양치 세 번, 여름에는 샤워도 아침 저녁으로 한다. 깔끔한 중년 여성이고자 하는 나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내 귓구멍은 말을 듣지 않고 끊임없이 가루를 생산한다. 귓구멍이라는 나의 은밀한 공간은 벗은 옷이 나뒹굴고 설거지는 잔뜩 쌓인, 어지러진 자취방보다 훨씬 더 부끄럽다.
연인에서 부부로 무장을 해지하며, 귓밥의 본색은 비로소 드러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누워서 받는 귀호강은 불가능하다. 모름지기 미지의 대륙에는 사람이 수색할 수 있는 한계점이 존재하는 법. 그러니까 힘들게 건져올린 귓밥이 추락하여 아득한 크레바스로 떨어지는 날에는 낭패다. 결코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앉아, 한 손에는 휴대폰 전등을, 다른 한 손은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는 귓밥을 받아내기 위해 직각으로 귀 밑에 갖다 댄 채 모든 준비를 마친 경건한 수술방으로 집도의를 호출한다. 슬프다. 아름답지가 않다. 귓밥 뿐만 아니라 이 그림조차 아름답지가 않다.
모처럼 오붓한 오늘 밤. 남편과 꼭 붙어앉아 귓밥을 팠다. 마지막 작업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다며 남편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추를 시작했지만 역시나, 적지 않은 중상급의 우량한 녀석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 나의 귓밥이여. 나의 마르지 않는 샘이여!
오랜 수행을 쌓은 스님의 몸 속에서는 귀한 사리가 나온다고 하던데. 이놈의 부처님 귀에서는 죽어서도 귓밥만 잔뜩 나오게 생겼다. 이렇게 매번 뭐가 가득이니 뭐, 복도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좋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어쨌거나 휴대폰은 계속 가벼워지고, 날렵한 귓불에 대한 욕심도 모자란 외모에 대한 아쉬움도 부지런히 비워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