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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Oct 05. 2019

노란 라디오

찾을 물건이 있어서 몇 해만에 작업장에 다녀왔다. 우리 집 바로 아래 걸어서 삼분도 안 걸리는 작업장은 마을 주민들의 공동 공간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농산물 꾸러미를 포장했다.


문을 열자마자 찾을 물건보다 꾸러미 작업을 하던 남편과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보낼 채소 품목을 정하고 내가 먼저 수확한 농산물을 포장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쉴 틈 없이 채소를 수확해 가져다주었고  채소 수확이 끝나면 작은 의자에 앉아  꾸러미 포장을 같이 했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시간들 순식간에 통째로 몰려왔다.


어느 엄마 집에서 오래된 노란 라디오를 들고 와서 작업장에 틀어놓고 일하기 시작했다. 작업장에서 가장 잘 잡히는 주파수는 EBS 책 읽는 라디오. 우리는 책 읽는 라디오를 들으며 채소 포장을 하다가도 읽어주는 책의 느낌에 따라 어느 순간 손을 멈추고 생각을 하기도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잔뜩 먼지를 묻힌 채 노란 라디오도 거기 그 자리에 놓여있다. 우리가 라디오를 듣던 그 순간들. 책을 읽어주던 아나운서의 목소리, 함께 들었던 음악이 귓가에 들릴 것만 같았다.


남편은 몸이 아프다고 했고 나 혼자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사이 병원에 다녀온 남편이 종이 한 장을 내밀고 긴장을 둘러대는 웃음으로 소견서를 내밀었던 곳. 그곳도 거기 작업장, 그날도 나는 노란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기억이 거기에 까지 이르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여기 더  있다가는 식은땀이 날 것  같아.


찾아야 했던 물건을 찾고 봉인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작업장 문을 재빨리 닫았다.  

우리 집 뒤뜰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면 바로 집인데 나는 일부러 길을 돌아 천천히 걸어 집으로 왔다. 노란 라디오를 집으로 들고올까... 아니야 다시는 작업장은 안들어갈꺼야 하면서...


저녁에 아이들을 졸라 마을회관 앞에 있는 그네를 탔다. 밤바람이 불었고 그네가 오를 때마다 마음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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