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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un 28. 2019

사별 가족 모임에 다녀왔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내가 그대에게 드리는 말

사별 가족 모임에 다녀왔다. J병원 호스피스에서 모임을 안내하는 우편물을 받고서 한동안 만지작거렸다. 쉽게 결정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매우 절실하게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용기를 내도록 하는 일이기도 했다.  요즈음의 나는 내가 슬픔에 젖어있다는 걸, 그리고 한동안 더 그럴 것이라는 걸, 그로 인해 일상의 풍경이 달라진다는 걸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보아달라고 할 수 없으므로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삭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이건 매우 힘든 일이야. 마음 놓고 힘들어야 해' 내 마음은 늘 이렇게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별 가족 모임이 있다는데 다녀와볼까? " 짐짓 가벼운 듯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래 엄마, 다녀와.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이 대답해주었다. 

"그래 그래, 그래야겠어" 어쩌면 결심을 하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탁탁 접으며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같은 시기에 병동에 계셨던, 유일하게 서로 알고 있는 보호자 분과 나, 이렇게 둘을 제외하면 모두 노년의 어르신들이다.  그럴 거라고 생각을 하며 왔는데도 내가 젊은 유가족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같은 병실 어르신들이 말하시곤 했다.

"젊은데, 젊은 사람인데  어째 병에 걸렸을까", 

"아고 한참 일할 나이인데 어쩔까, 애들도 더 키워야 할 것 같은데" 

남편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아직 젊은데 라는 말을 계속하여 들어왔는데도 남편과 나, 둘 다 청은 아니었으므로 젊다는 실감을 못했었다. 이렇게 사별가족 모임에 오니 슬프게도 나는 참 젊다는 걸 알겠다. 남편이 참 젊은 고인이라는 것도 알겠다.


한 사람 한 사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나처럼 사별한 지 백일도 안 되는 유가족부터 십 년 세월이 흐른 분까지 시간이 오래 지나면 무뎌진다고들 하던데 세월이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하나 보다. 울먹울먹 그리움을 말하신다. 내 차례가 왔다. "이번 주말에 삼 개월이 되네요. 마음껏 울고 싶어서 왔어요"


오늘은 모임에서 석고 방향제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석고 방향제 준비물이 주어지고 교육실이 왁자지껄해진다. 우리 마을이 합성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세제류를 쓰지 않고, 남편이 항암을 시작한 이후 남편과 함께 피부 자극이 가장 적은 베이비로션을 바르게 되어 나는 유난히 향을 싫어한다. 평소였다면 여러 가지 향 때문에 머리가 몹시 아파 시도도 하지 않았을텐데 나도 향과 오일을 넣어 석고에 섞고 몰드에 석고를 붇고 꽃장식을 한다.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안타까우신 지 바로 옆 어르신들께서 쉴틈 없이 이것저것 도와주신다. 양을 재는 저울의 영점도  잡아주시고 석고 방향제에 꽃을 꽃도 더 나누어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만들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지나가잖아, 이렇게 몰두할 게 있으면 좋아" 근황을 나누는 중에 작은 소리로 내가 꿈에 남편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꿈에 안 나오면 편안하게 잘 간 거야" 해주신다.


석고 방향제를 만들고 저녁밥을 먹고 2층에 내려 모임실까지 다시 걸어간다.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한 바퀴씩 돌던 2층. 3개월 만에 다시 그 자리를 걷는다. 남편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남편의 표정, 남편의 목소리, 창밖으로  봄꽃이 피어나던 풍경, 희망과 절망, 사랑과 쓸쓸함이 공존하던 공간을 다시 걸으니 마음이 저릿저릿하게 울고 싶어 진다. 모임에 온 게 아니라면 나는 돌고 또 돌고 2층을 계속 맴돌았을지도 모른다.


사별가족 모임의 이름은 '물망초' 모임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 먼저 간 이들이 떠나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말로만 늘 생각을 했었는데 아닌가 보다. 하늘에서 그가 나를 잊을까 봐 나는 그게 걱정이었나 보다. 다 잊고 하늘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하면서도 그가 나를 잊을까 봐 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여보 부디 나를 잊지 말아 주기를. 우리를 지켜봐 주기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어두컴컴해진 저녁. 버스는 익숙한 길로 달려가고 내가 만든 방향제 향이 슬금슬금 퍼져 나온다. 울컥울컥 마음이 시리게 아프다. 내년에는 마당에 물망초를 심어야겠다. 나를 잊지 말아요. 내가 사랑하는, 너무 그리운 사람.


 이 안내장은 그동안 내가 받아온 수 많은 안내장 중  가장 의미있는 안내장이 되었다


몰두하게 해 준 방향제. 어르신들이 꽃을 계속 챙겨주셔서 하나씩 더 늘여서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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