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Jul 15. 2019

나을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 백번이라도 빠지겠어

항암 기록 2) 임상 그리고 표준 항암

AZD 9291, AZD 6094. 뭔가 싶은 이 단어는 남편이 참여했던 임상 시험약의 이름이다. 남편은 표적치료제 타세바에 내성이 오고,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의 2차 돌연변이인 T790M이 확인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3세대 EGFR 표적항암제라고 할 수 있는 신약, 타그리소를 쓰는 임상이었다.


남편이 표적치료제 타세바 복용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2016년 5월 4일이고, 타그리소 임상을 시작한 것은 2016년 8월 31일이었는데 임상에 들어가기 전 3개월 동안 남편은  T790M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조직 검사를 해야 했다. 타세바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복용이 중단된 것이라 임상이 확정되기 전까지 항암 없이 3개월을 보내는 것이 우리로서는 무척 불안하고 조바심 나는 일이었다. 남편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우리가 불안해할 때마다 주치의인 N병원 H선생님은 반드시 조직검사 결과가 일치해 신약을 사용해볼 수 있을 거라며 우리에게 용기를 주셨고, 원하는 검체가 나오지 않아 다시 조직검사를 할 때는 검사 결과가 다시 나올 때까지 입원을 해서 통증관리를 하자고 하셨다. 다행스럽게도 임상에 참여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H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동안 많은 병원에서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며 말하는 의사들을 많이 보아왔던 터라 의사가 저렇게 환자를 보고 기쁘게 웃어줄 수 있다니 하고 작은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임상에 참여하게 되면서 우리는 한 달 약값이 천만원에 달하는 신약을 비용 없이 먹어볼 수 있게 되었는데 효과가 좋아 오래오래 먹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내성이 와서 2016년 8월 31일부터 2017년 2월 13일까지, 그중에 간수치 상승으로 먹지 못한 기간도 생겨 실제로는 6개월 정도 복용할 수 있었다. 임상 초기에는 뇌 전이도 없어지고 폐, 임파선, 간에 있는 암들도 모두 작아져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타그리소가 뇌전이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암세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면서 심부정맥 혈전이 생겼고, 뼈 전이, 간 전이가 점점 심해져 임상이 결국은 중단되고 말았다.


임상 중단 이후 남편은 알림타라는 항암제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순하다고 하는 약인데 남편에게는 효과도 없고 힘들기만 한 약이어서 단 한차례만 맞았다.  그 후  이리노테칸+시스플라틴, 탁솔+카보, 비급여 타세바, 젬자+카보 조합의 항암을 2017년 4월 13일부터 2018년 12월 3일까지 진행했다.  효과를 보이다 내성이 오고, 다른 항암제를 쓰고, 효과를 보이다 내성이 오고 다른 항암제를 쓰고.... 우리는 돌아서면 늘 새로운 시작점에 서있곤 했다. 표준항암제를 사용하면서 두 번 머리카락이 빠졌었다. 머리카락만 빠지는 게 아니라 눈썹도 다 빠져 얼굴이 그야말로 점점 퀭해지고, 독성 항암제 때문에 백혈구 수치도 종종 떨어져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러나 남편은 늘 웃었고, 재미있게 지냈다. 머리카락이 술술 빠지기 시작할 때면 우리는 이발소로 가서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다. 남편이 폐암인 줄 알고 계시는 이발소 아저씨는 머리를 밀어주실 때마다 경건한 표정을 지어주셨는데 그게 고마우면서도 남편이 독성 항암 중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서 가슴이 시려지곤 했다.


아빠의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카락, 눈썹이 다 없어지고 빠져도 막내 동찬이는 아빠에게 " 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아 보여요 아빠"라고 말해주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의 기분을 달하게 해 주었다.  딸들은 화장품을 가지고 와서 아빠 눈썹을 그려주었다. 어떨 때에는 색조화장도 해주었다. 그럴 때 남편은 사진을 찍으라며 재미있는 포즈를 취해주었다.  남편에게 "머리카락이 빠져서 어떻게 해"하면 "다 나을 수만 있다면 머리 카카 락 백번이라도 빠지겠어"라고 말했다.  머리카락 백번이라도 빠지고 지금 남편이 우리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이 호스피스에 있을 때에는 한없이 통증에 시달려서 어떻게든 통증을 덜 느끼게 해 주는데 온통 신경이 쓰여 남편 머리카락이 예쁘게 자랐는지 돌아볼 틈이 없었다. 입관식을 할 때 나는 비로소 남편의 머리카락이 예쁘게 자랐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앞으로 다시는 만져볼 수 없는 남편의 고운 얼굴을 쓰다듬고, 예쁘게 자란 머리카락를 쓰다듬고, 그가 하늘로 잘 올라갈 수 있게 옷을 입히고 꽃신을 신기면서 남편을 예쁜 모습으로 하늘로 보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표적치료제를 먹고, 임상으로 신약을 먹을 때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부럽다는 말을 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말은 맞다. 표준 항암부터 시작하시는 분들보다 2종류의 약을 더 써볼 기회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남편에게 찾아온 고비 고비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 준 것은 표준 항암이었다. 그래서 나는 타세바보다, 타크리소보다 이리노테칸+시스플라틴, 탁솔+카보 조합의 항암이 더 고마웠다. 슬프게도 지금은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가끔씩 항암을 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대체요법을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씩 한다. 그런데 나는 안다. 남편도 나도, 우리 가족 모두 그 시간 동안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것을. 다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도 우리는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나을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 백번이라도 빠지겠어" 나는 이 말을 죽을 때까지 어느 순간순간 떠올리게 되리라. 그가 간절하게 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떠올리며 울게 되리라. 그의 몫까지 열심히 사는 것. 그게 내가 평생 동안 해야할 일이다. 오늘도 남편이 그립고 보고 싶다.





이전 11화 첫 항암, 그 시절에 대한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