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Jul 06. 2019

첫 항암, 그 시절에 대한 기억

항암의 기록 1. 표적치료제  타세바

비소세포 폐암, 선암 4기였던 남편의 첫 항암제는 "타세바"(tarceva)라는 표적치료제였다. 타세바는 하루에 한알, 식전 1시간 전이나 식후 2시간 후에 먹는 경구 항암제로 EGFR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변이가 있는 경우 적용되는 항암제이다. 처음 남편이 폐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항암을 떠올렸을 때 드라마에서 보듯이 주사를 꽂고, 이내 곧 창백해지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었다. 미리 여러 자료들을 검색해서 표적치료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항암제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많은 분들이 표적치료제로 첫 항암을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도 알았다. 남편의 조직검사 결과 표적치료제를 먹을 수 있다고 했을 때 폐암 4기 생존율이 무척 낮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막연히 완치되는 기적을 기대해보기도 했었다.  


남편이 타세바를 복용한 것은 기록상으로는 2015년 9월 22일부터 2016년 5월 4일까지로 7개월 반 정도이다.  하지만 복용 두 달 만에 폐렴으로 복용을 중단한 적도 있고,  간수치 (ALT, AST)가 너무 올라 복용을 중단한 적도 있으니 남편이 실제로 타세바를 복용한 기간은 6개월 반 정도가 된다.  조직검사 결과를 설명해주시며 타세바로 항암을 시작하자는 의사 선생님께 다른 환자분들은 평균 어느 정도 타세바를 복용하시냐고 물었었다. 10개월에서 1년, 그보다 더 오래 드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대답을 듣고, 우리도 그 정도는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먹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타세바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다.


타세바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발진이다. 복용하기 전에 항암 교육실에서 타세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고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현실은 너무 달랐다. 타세바 복용 열흘이 지나면서부터 남편의 코, 턱, 얼굴, 입술로 발진이 급격하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빨갛게 피부가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농이 가득 차는 발진이었다. 심한 가려움증은 물론이고 발진이 뭉치고 뭉쳐져서 떨어져 나가면 얼굴은 금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발진 때문에 입술이나 턱 근육을 사용할 때 아파서 밥을 잘 먹지 못하기도 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따가웠다. 가까이 오면 옮기라도 할 것처럼 마주치거나 같은 공간에 있으면 사람들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는 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발진은 표시가 났고, 얼굴 전체로 번진 발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발진 때문에 연고와 약, 샴푸 등을 따로 처방받기도 했지만 남편의 경우에는 이런 약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보습이 잘 되는 순한 로션을 열심히 바르고 스스로 부작용에 익숙해지고 감내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법이었다.  아빠 피부가 발진으로 엉망이 되어도,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며 피해도, "아빠 좋아", "아빠 사랑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남편의 부작용 대처법이었으리라. 남편의 발진이 완전히 사라진 건 내성이 와서 타세바를 중단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였다.


타세바를 먹는 동안 자몽과 자몽주스는 타세바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금지 품목이 되었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음료, 카레, 샐러드 소스 등 가공식품에 의외로 자몽 성분이 들어간 것이 많았다. 한 번은 카레가루를 녹이다가 봉투를 보았는데 성분표에 자몽이 쓰여있어서 화들짝 놀라 모두 버린 일도 있었다. 그 뒤로 식재료를 살 때에는 그게 무엇이 든 자몽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지 자세히 확인을 했다. 쌉싸름하고 시원한 맛. 나는 자몽을 좋아한다. 그때는 나도 함께 자몽을 먹지 않았다. 타세바가 중단된 후에도  남편과 나는 습관처럼 한동안 자몽을 먹지 못했고, 오렌지나 귤을 먹을 때에도 괜히 조바심이 나곤 했다.


그래도 타세바를 먹고 처음 몇 개월은 여러 병변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가족들과 자주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숨이 찼었을 텐데도 동찬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담양의 메콰세타이어 길과 죽녹원을 걷기도 했고, 남덕유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때 여섯 살이던 동찬이와 함께 덕유산 할미봉까지 등산을 하기도 했고, 전주 한옥 마을을 걷기도 했다. 남편은 서울에서 내가 참여해야 하는 모임에 손잡고 같이 참여해 주기도 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립고 그리운 시간들. 그 시절이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슬프지만 아빠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폐암 4기, 첫 항암 중이던 남편은 여섯 살 아들과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같은 모습으로 길을 걷던 아빠와 아들


3월쯤부터 남편이 배가 더부룩하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너무 부른 것 같이 불편하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민해지기도 했다. 뭔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 것 같았다. 검사 결과 간 전이가 무척 심해지고 뇌 전이도 생겨 남편은 2016년 5월 타세바와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타세바를 먹게 될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2018년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다시 타세바를 먹게 되었다. 내성이 왔던 표적 치료제를 다시 사용하게 되는 경우는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가 된다.  


신약 중에 맞는 게 있는지 여러 차례 조직 검사를 하면서 그 기간 동안 효과를 볼 수도 있으니 다시 먹어보자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을 믿고 타세바를 다시 복용하기로 했다. 타세바 한알의 비급여 가격이 29,78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달로 치면 90여만 원. 급여 적용이 되었을 때 한 달 타세바 가격은 7만원 정도였다.  장수에서 병원까지 오가는 비용에 비급여 약값까지 보면 한달에 못해도 150만원은 병원비가 되는 셈이다. 남편은 내가 고생할까 봐 이 약을 먹겠다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당신은 걱정할 게 없다고, 아직 그 정도 여유는 있다고 타세바를 먹겠다고 대답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때는 투병기간만큼 일하지 않은 기간이 길어졌고, 가지고 있던 돈은 다 썼던 때였다. 다음 달에 돈이 없어 약을 못먹게 되면 어쩌나 남편에게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늘 걱정을 했었다. 이제 하늘에서 남편이 그때 내가 무슨 걱정을 했는지 다 알게 되었겠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 생각을 하면 긴장이 되곤 한다. 생각해보면 타세바를 먹는다는 것은 날마다 항암을 한다는 것이다. 비급여로 타세바를 먹었을 때에는 첫 항암으로 타세바를 먹었을 때보다 훨씬 몸이 안 좋았을 때인데 경구 항암이라는 이유로 내가 혹여 신경을 덜 쓴 게 있는 건 아닌 지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5개월 동안 타세바가 제 일을 해주어 그걸로 그저 그 시간들이 감사하다.



더하여....  


첫 항암을 준비하면서 여러 책을 샀다. 항암 중 먹거리, 폐암을 제목으로 한 책들을 포함해 십여 권의 책을 사서 읽었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은 <암의 여정을 함께 하는 길벗> (발행처 : 보건복지부, 국립암센터, 국가암정보센터)이라는 안내서와  주디스 맥케이, 타메라 새쳐가 공저한 <암 생존자 되기, 항암치료 생존 가이드>였다.  그러나 투병 기간 내내, 그리고 사별 후인 지금도 책 보다 더 도움을 받은 것은 <폐암 환우들과 그 가족의 모임 - 숨사랑 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 (https://cafe.naver.com/lung) 였다.


그 시기에 남편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따비 출판사)이라는 책이다. 남편은 피로가 쉽게 와서 누워서 바둑 동영상을 보거나 TV를 보는 일, 폐암 온라인 카페 글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했는데 이 책은 즐거운 표정으로 집중해서 읽었다. "여보 그 책이 그렇게 재미있어?" 하고 물으면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며 "응"하고 대답을 했다. 그 눈빛이 참 그립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대처해나가고 싶은 생각에, 무엇보다 아빠가 암일 때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싶어서 제목만 보고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유디트 바니 스텐달 지음, 미메시스 출판사)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용기를 내고 싶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마음이 위축되고 우울해졌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에는 울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남편의 투병 기간 동안 그와 나의 마음이 장면 장면 읽히곤 한다.


항암과 관련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책들.  폐암을  제목으로 한 책들은 읽어보면 특정 병원 홍보용 같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첫 항암 중 남편이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에는 우울감을 잔뜩 안겨줬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장면 장면 나와 남편의 어느 순간순간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이전 10화 사별 가족 모임에 다녀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