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진희 Jun 05. 2019

내 정원의 시작

그리움과 기억, 나를 위한 치유를 담은 작은 정원

올해 3월 29일,  2015년 8월부터 폐암투병을 하던 남편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처음 며칠 동안은  도무지 뭘 해야 좋을 지를 몰랐다. 여기저기 아픈 것만 같아 시어른 몇분이 함께 집으로 오셨는데도 일찍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자버리기도 했고 괜찮은 척 마음을 숨기고 지내보기도 했다.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오롯이 나와 아이들만 남았을 때 처음 며칠 동안은 남편의 옷을 정리했다. 집에서 입던 옷, 병원을 다닐 때 입던 옷,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에 옷은 부지런히 빨아 다시 잘 개어 옷장에 넣어두었고, 오래도록 입지 않아 빛바랜 양복은 모두 버렸다. 양복을 내다 버릴 때에는 어느 한 시절, 양복을 입고 일하던 남편의 삶이 버려지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 거리고 손끝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남편 옷정리가 끝난 후에는 방 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망가진 아이들방 서랍장을 손보고,  이방 저방 수납방식 바꾸기에 몰두해보았다. 방정리를 다 마치고 나니 맥도 풀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무슨 일에 몰두해야 혼자, 남겨진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남편은 마지막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냈다. 2015년 8월 폐암 확진 이후 2015년 9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8종류의 항암제를 쓰며 투병을 했고, 마지막 약이었던 항암제가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한 2018년 12월에 호스피스를 결정했다. 처음 우리는 외래로 병원을 방문하는 자문형 호스피스를 했다. 자문형 호스피스를 할 때만 해도 이 상태로만 계속 있었으면, 이대로만 유지되어도 좋겠다고 몇번이나 생각했다. 그러다 결핵까지 겹치고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2월 20일에 남편은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남편은 극심한 통증과 결핵으로 인해 1인실에 격리 되어 있다가  3월 6일에야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편은 호텔학교를 나온 호텔리어였다. 양복을 입고 홀에서 일하는 그는 참 멋있었다. 평생 도시사람인 것 처럼 반짝이는 샹들리에 불빛 아래 일하는 남편에게 농촌은 먼 이야기 같았지만 강원도가 고향인 남편의 마음 한구석에 늘 농사를 짓고 싶은 바람이 있었나보다.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는 남편의 바람을 따라 2009년 우리는 전북 장수로 귀농을 해 유기농 제철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폐암이 확진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농사일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농부의 마음이 가슴 한쪽에 있어서였을까

"몸이 좀 좋아지면 마당에 포도를 심어야지, 넝쿨을 탈 수 있게 마당에 뭘 만들어봐야지"

"마당을 정원으로 만들어야지"남편은 종종 마당을 정원으로 가꾸자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입원해있던 J병원 호스피스 병동 2층에는 본관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고, 큰 유리창 너머 창밖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2층을 한바퀴 도는 십여분 남짓한 시간은 하루종일 통증에 시달린 남편의 유일한 병실밖  나들이었고 몇마디 속마음을 꺼내어 말하던 시간이었다. 3월, 2층 유리창 너머로는 하얀색, 분홍색의 목련이 보였다.

"여보, 우리도 좋아져서 밖에 나가서 꽃을 보자" 

"마당에 예쁜 정원을 만들어야지"

나는 2층을 돌 때마다 남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밖에 나가 꽃을 보지도, 마당에 정원을 만들지도 못하고 하늘로 갔다. 제단에 놓을 꽃을 결정하면서 나는 마음이 아리고 아렸다.


모두들 감자를 심고, 밭을 만드는 4월 중순. 정원을 만들고 싶다던 남편의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  쟁기와 호미를 손에 들고 망가져 뜯어낸 툇마루와 통나무 장작을 모아  마당 좌우에 틀밭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상추며, 래디쉬 같은 씨앗을 찾아 틀밭에 심고, 양배추, 브로콜리, 토마토, 파 모종과 꽃모종을 사서 심었다. 내가 남편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텃밭 정원을 만든다고 하니 친구와 이웃과 지인들이 꽃과 모종을 가져다 주기도 심어주고 가기도 했다.


간병을 하고, 장례를 치루고, 유품을 정리할 때는 멀게 느껴졌던, 내 일이 아니었으면 했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치루어내느라 절절한 줄 몰랐던 슬픔과 그리움이 이제는 너무 절절하게 느껴진다. 내가 더 잘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 그리움과 두려움이 수시로 마음안에 넘실거릴 때 나는 호미를 손에 쥐고 마당으로 나선다. 정원텃밭을 만들기 시작한 지 이제 한달반. 꽃망울이 맺히고, 어제 없던 꽃이 아침 인사를 하고, 나비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일년, 이년, 오년, 십년. 그리움이 기록되고, 사별의 아픔이 치유되는 정원을 만들어가보고 싶다. 내 정원의 시작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 내 자신을 위한 치유의 시작이다. 오늘 아침 마당에 패랭이꽃이 새로 피어났다. 


* 생태텃밭정원 만들기와 남편의 폐암 투병과정, 호스피스 병동 생활의 경험을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망가진 툇마루와 통나무조각을 모아 틀밭을 만들었다.
나무 파레트에도  열무를 심었다. 
텃밭정원을 만든 지 한달반이 지나니 이제 좀 텃밭정원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 12화 나을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 백번이라도 빠지겠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