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각을 하고 있나요, 당하고 있나요?
(1단계. 퇴근하며) '그때 조금만 더 준비해서 말할걸. 그랬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2단계. 집에서 밥을 먹으며) '아니야. 내가 뭘 말해도 대표님은 어차피 머릿속에 정해진 답이 있었을 거야. 내가 아무리 준비를 잘했어도 이럴 운명이었어.'
(3단계.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우며) '아니야. 점심시간 끝나고 갔거나, 누구나 기분 좋은 금요일에 가서 프로젝트 컨펌을 받았으면.. 그동안 준비한 프로젝트가 어그러지진 않았을 것 같은데?'
원하는 대로 풀리길 원했던 하루.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날이 있으신가요?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저는 그날 저녁 내내 제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을 때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주로 상사에게 질책을 받거나, 그간 열심히 준비해 온 프로젝트가 결국 마지막 단계에서 빠그라지거나(?) 등. 원하지 않는 어떤 이슈가 생긴 경우 주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합니다.
경험상,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는 아니더라고요. 어떤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주로 사람들은 'why'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이 우리를 고통으로 이끌고 들어갑니다. 너무 많은 생각은 과거 경험을 반추하게 만들고, 반추는 비관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 스스로 괴롭히기'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무 의도 없이 그냥 궁금해서 '왜요?'라고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답을 하다 보면 결국 할 말이 없어지고 뭔가 힘들어지더라고요(?...ㅋㅋ그걸 스스로에게 시전하다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 못 이루게 되는 이런 상황. 사실 생각을 멈추긴 쉽지 않습니다. 감정만큼이나 생각 역시 내가 스스로 '그만 생각해야지'한다고 자유롭게 멈출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특히, 나쁜 생각은 마치 좀비처럼 멈추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우리를 쫓아와 머릿속에 자리 잡습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 멈출 수 없을까요?
'생각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한 것이 일단 좋은 신호인데요. 우리가 생각에 휩쓸려가는 상태(자동반사)와 생각을 바라보는 상태(알아차림)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훈련이 바로 요즘 핫한 키워드, 마음 챙김(Mindfulness)이고요. 이 마음 챙김을 통해 얻는 능력이 '생각을 생각으로 바라보는 힘' 바로 메타인지입니다.
마음 챙김, 메타인지가 익숙하지만 정확하게는 와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오늘 브런치글을 써 내려갑니다.
처음에 마음 챙김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무언가 '고요한 절', '향 냄새'와 같이 불교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저만 그런가요? 그리고 심리(과)학에서 마음 챙김이라는 용어를 마케팅(?)적으로 쓰기 위해 만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뇌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나름 과학적인 훈련에 가깝더라고요.
미국 메사추츠대학교 존 카밧진 교수/박사에 의하면, 심리학에서 마음 챙김은 '현재 이 순간에 의도적으로, 비판단적인 태도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벌써 키워드가 보이시나요? #현재 #비판단. 많이 들어보셨을 Here and Now 역시 마음 챙김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마음 챙김의 키워드는 '비판단(non-judgement)'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나는 왜 생각을 멈출 수 없을까?',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끊임없는 생각의 고리를 마치 영화를 보듯 알아차리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즉, 생각을 '생각' 자체로서 바라보는 것이죠.
과거를 자주 생각하고 반추하시는 분들은 '나는 왜 현재를 생각하지 못할까?'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실 때가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저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과거의 기억, 순간, 추억 들이 몰려올 때마다 "왜 이렇게 현재에 살지 못하는 거야?"라며 스스로 매일 비난하며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생각이 과거로 돌아가니 미쳐버리겠더라고요.
알고 보니 우리 뇌의 기본 모드는 가만히 있을 때 자동으로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재생하는 공회전 상태였습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스스로를 따뜻하게 격려하진 못할망정 자책을 했으니. 참. 스스로를 못살게 구는 것의 전문가죠?ㅎㅎ 마음 챙김은 이러한 공회전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는 '작업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는 훈련입니다. 즉, 뇌의 근육을 키우는 정신적인 헬스인 것이죠.
단순히 명상을 하거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유튜브를 듣는 것? 모두 좋습니다. 다만, 진짜 마음 챙김은 다음에 소개할 '알아차림'을 실행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걸까요? 재학 중인 연세대 심리과학이노베이션 대학원의 코칭심리학 과목에서 '직면(Confrontation)'와 알아차림이 비슷하지만 약간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통점은, 바로 '틈(space)'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알아차림'은 나의 '생각'과 '나' 사이에 틈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틈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계속 괴로워할 것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잠시 호흡을 하고 생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인지.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제가 성취중독자라는 수줍은(?) 고백을 했었던 것 기억나시나요? 저는 늘 '주말인데 쉬어도 되나? 블로그 글 하나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연료 삼아 살아온 사람입니다. 과거의 저라면 어떻게든 일어나서 하나라도 더 글을 쓰고, 기회를 늘리기 위해 무리했었을 텐데요.
이제는 저의 마음속에서 '주말인데, 그냥 누워만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주말에도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개인 작업한다고'라고 속삭이는 또 다른 자아를 제삼자처럼 가만히 바라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멈춘 뒤 "아, 또 성취중독자 카리나의 목소리가 시작되었네."라고 먼저 객관화하고요. 그리고 제가 느끼는 감정 - 주로 불안인데요-에 이름을 붙입니다. "카리나, 너 또 불안하구나"이렇게 한 번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거죠.
거울을 보고, 혹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켜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번 이야기해보세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스스로의 눈을 보면서 말하는 것, 즉 불안감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관찰하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제삼자처럼,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렸으면 그럼 그 다음엔 무엇을 할까요? 말씀드렸듯이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휴식인지, 혹은 글쓰기(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남들이 앞서나가고 있다고 불안해하면서 몸도 좋지 않은데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을 것인지, '선택'의 상황에 나를 둔 뒤, 나의 몸과 마음이 더 편해지는 쪽으로 선택합니다. 요즘은 잠을 선택하며 잘 잤던 기억이 있네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알아차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 너무 예민해"라는 소리를 회사에서 상사에게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거의 저라면 "내가 정말 예민한가?"라며 자기 의심에 빠졌을 것입니다. 늘 지나치게 다른 사람 말을 귀담아듣던 습관도 있고, 하도 "너는 너무 의견이 강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라는 말을 들어와서 유독 이런 말들에는 흔들리곤 했어요. 특히, 부모님과 같이 소중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거나, 친구, 직장동료와 같이 생활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면 더욱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의심했었죠.
여기에 마음 챙김을 적용해 볼까요?
"아, 저 사람이 내 현실감을 흔들려고 하네. 지금 내 심장이 빠르게 뛰고, 기분은 어딘가 찝찝하고.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올라오고 있구나"하고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 챙김을 적용한 예시입니다. 즉, 다른 사람 말에 의해 생긴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잠시 멈추는 겁니다. 멈추면 틈이 생기거든요.
그리고 이 틈을 타서 '이건 사실이 아니야. 그리고 사실이더라도 저 사람이 유발한 감정이다.'라고 생각하고 쳐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글쎄요. 때로는 쳐내고 필요에 따라 수용하는 것이 나를 지키는 현명함이라 생각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 마음 챙김은 나쁜 생각을 없애는 마법이 아닙니다.
나쁜 생각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관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파도(생각)가 몰려올 때,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 대는 대신, 서핑 보드에 올라 파도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보자고요. 유유하게 나의 생각을 바라볼 때, 마음에도 근육이 생기고 힘듦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답니다. 오늘부터 한 번, 나의 생각을 바라보는 연습. 별거 아니니까 거울을 보고 한 번 해볼까요?
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