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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by 이일일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기를.



한 때 꽂혀서 SNS 이곳, 저곳에 문구를 새겨놓고 가슴속에 늘 되새기던 말이었다.

어쩌면 어느 시절에 살아가든 내가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변하지만 변함이 없는 것.

그게 무엇인지 며칠을 몇 개월을 되새겨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역시 이 문제에서도 정답은 없겠지만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참 고통스럽고 신비스럽다.

한국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다른 언어들로 표현했을 때는 또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에 내가 보았던 저 말은 꽤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던 말이었다.


이제야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를 읽으면서 '본질'이라는 파트에 갇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아마 요새 가장 관심 있게 생각하던 것에 가장 근접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어서 이것마저도 '운명'인가 하는 마음에 책장을 덮은 채로 한참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에 대한 위로와 경청할 내용들이 동시에 담겨있던 터라 가을이 끝나가는 마당에 한참을 내리는 요상한 빗줄기와 함께 오전이 꽤 우울할 뻔했는데 생각보다 풍요로워졌다.

본질이라는 말 자체가 참 현실감 떨어지게 만드는 것 같으면서도 없으면 허전한 그런 단어인 것 같다.

거의 죽을 때가 다 되면 아마 이런 고민들과 생각에 갑자기 사로잡혀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길 방지하기 위해 나는 미리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명분을 세워놓고 잠시 멈춘다.


몇 구절이 뼈에 사무치게 남는다.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 '연륜'이라는 것.

읽으면서 역시 나이가 깡패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냥 나이가 먹는다고 해서 '연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면서 역시 인생이 끝이 없구나 하고 좌절로 마무리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국기행 인용구절은 훨씬 더 절망스러웠다.

본질을 탄탄하게 만들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인간의 증서' 이야기는 그야말로 뼈를 때리다 못해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다.

결국 쉽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직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과도 같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절망적이다 못해 이제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더불어 곳곳에 너무 마음에 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수영을 배우는 것의 본질을 '땀 흘리는 것'으로 잡아 놓고 비교나 어떠한 자기 자신과의 타협 없이 꾸준히 해내시는 부분은 의외의 생각의 통로를 하나 열어준 느낌이다.

상식 공부를 하는 대신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반골기질은 나 또한 비슷하지 않았나 싶은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그냥 공부를 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패스. 분명히 다르다. 그래도 비슷한 것은 아마 나도 시험은 불합격이었을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니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비슷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고 본질이야! 하고 우기는 것만큼 마음 편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보통 이것을 합리화라고 하겠지.)


기준점을 밖에 찍지 말고 안에 찍으라고 따님께 해주신 말씀도 인상적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본질이 안에 있으니 외부로 아무리 방점을 찍어봤자 닿을 수 있는 루트가 없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다. 본질에 가까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는 더해진다. 결국 본질도 자기 판단이라는 것. 나에게 무엇이 진짜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한다는 것.

사람마다 그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를 테니 당연히 본질도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해하기 쉽고 임팩트 있는 말들로 적혀있는 것에 밑줄을 한참 그으며 미소 지었다.

나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머리로만 알고 본질적으로는 잘 몰랐던 것 아닐까.)


스펙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보면 좋을 이야기이자, 채용담당자들이 보면 좋을 이야기인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겉 좋은 이야기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책임져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공부의 본질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실력을 내면에 쌓고 어디에서든 경쟁력을 가지기 위함인 것처럼 스펙은 포장이기에 이것에 집중하기보다 진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말씀은 지금과 같은 채용시장에 필수적으로 더 필요한 이야기라고 본다.

아무리 좋은 스펙이라도 그것 자체가 본질이 될 수 없다는 말에는 211% 동의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영어 시험 점수가 높다고 해서 진짜로 영어를 잘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그게 결국 본질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나도 똑같이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발표하는 자리에만 서면 손을 바들바들 떨었고 목소리는 염소 보다 더 떨렸다. 아마 염소가 봤다면 친구 먹자 했을 정도다.

그런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발표를 하고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보고 진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내가 내 인생을 생각해 봤을 때는 꿈도 꿀 수 없던 것이었다.

작가님은 너무 잘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음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던 것 같다.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공포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 테고 내가 이겨낸 방법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먹기였다.

어차피 해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알쏭달쏭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좋았던 것은 책에 '저 자신을 돌아봤더니'라는 구절이었다.


결국 무엇이든 본질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이든, 본질을 잘 찾지 못하겠어서 원인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무엇을 하더라도 겉핥기식으로 할 수밖에 없거나 꽤 먼 길을 돌고 돌아와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맬 수 있다.

(물론 헤맨 만큼 내 땅이기에 아깝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본질은 진정성과 함께 사람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영역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나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충실히 잘 보내야 하는 것도 맞고.


다시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해보자면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인간'이다.

물론 '변한다'라는 말 자체가 좀 맞지 않을 수도 있기는 하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거나 본인도 변화한 것 같다면 원래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찾아가고 있는 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본래의 나를 알아가는 것에 가깝다는 말이다.

에르메스라는 명품 브랜드의 지면 광고였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역시 명품 브랜드는 그래서 다른 것인가.)


실제로 인간은 그래서 다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렇게 찾아가면서 편하기도 하지만 결국 변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아이러니한 말장난 같지만 많은 생각과 느낌이 담긴 큰 그릇과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지금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나의 시간이 가치 있음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명분을 합리화와 곁들여 찾은 것 같아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있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급변하는 세상에 변치 않는 사람 안의 본질을 찾아가는 레이스는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다들 그보다는 외부에 방점을 찍고 그 레이스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뭐, 그렇다고 내가 모든 면에서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겠지.


본질이 무엇인가에 따라 내 안의 흔들림이 달라진다.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인생에 본질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돌아보고 알게 되는 것들에 따라서 아마 모든 사람들의 안에 있는 울림과 흔들림은 달라질 테고, 그것이 향하는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우리는 그 울림과 흔들림을 찾긴 찾아야 할 거다.

죽는 순간까지 다 알 수 없을 아리송한 나의 인생이지만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각자 자기 안에 있는 본질에 조금씩은 가까워져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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