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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나, 그리고 당신

by 이일일


가을의 끝자락이라고 부르기가 무섭게 시간이 사라진 것처럼 겨울이 바짝 쫓아와 날씨를 흔든다.

쌀쌀해진 날씨에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면서 한 해가 가고 있음이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시간이 빠르다는 이야기도 무서워서 못하겠다.

자꾸 빠르다, 빠르다 해주니까 이 친구가 이제는 종적을 감춰버리듯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눈 깜빡하면 아침이 와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시간이 빠르다 못해 놓쳐버린 지하철 같다.

우리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 우리가 휩쓸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늘 지금 이 순간은 내일이나 모레 흐르는 시간이 데려다 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게 밀려서 그저 무엇인가 하고 있다 보면 지나가버리는 '오늘'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 대접을 받을 친구가 아닌데 인간이라는 게 원체 간사해서 마치 이미 손에 얻은 듯한 것은 가차 없이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직 갖지 못한 내일이 더 탐이 나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가득하다.

막상 내일이 오늘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이라는 친구는 그저 돌아보면 지나 있는 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늘 부족하고 결핍 속에 우리는 살아가게 되는 듯하다.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이 흘러가는 매일 이 시간이 어쩌면 그렇기에 가장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고 되돌릴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어도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늘 가장 먼저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 중 하나.

그건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여전히 내 안에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운다.

그렇게 해서 나에게는 없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그 전쟁에 한 번 뛰어들어는 봐야 하는 것일까.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늘 끊임없이 던지면서도 고민의 끝은 늘 나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곳. 내가 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모르는 나.

끔찍하게도 나에게 가장 잔인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것이 어쩌면 희소식이기도, 어쩌면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는 지혜가 적힌 책에서 가을 나뭇잎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오묘하다. 처음에는 알쏭달쏭하다가 조금 지나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다.

도대체 작은 나뭇잎의 위대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머릿속 위대한 편견의 장벽과 선입견의 문을 넘지 못한 문장은 일단 낡은 머릿속 '내 마음대로 꺼내 볼 수 있는 상자' 안에 잠시 일단 넣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가을의 나뭇잎을 보다가 문득 상자가 열리면서 나에게 위대한 깨달음을 안겨주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으며.

그나저나 가을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리던 나의 마음이 들이닥친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얼음 동상처럼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뜨신 물을 부었다가는 속절없이 녹아버릴 수도 있는데 녹은 후에 그 안에 본질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함께 얼어도 걱정 녹아도 걱정인 내가 한심하다.


나에 대한 사유와 고찰이나 뜬금없이 혼란과 함께 찾아오는 생각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나의 경험을 들춰보고 되돌아도 보고 그렇게 채운 내용들은 지금 다시 보면 참 건방지기도 했지만 용기 있는 걸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들에 갇혀 현실과는 동 떨어진 듯한, 마치 대단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깊은 고찰과 사유를 통해 헤쳐나가는 사람인 것처럼 허세가 잔뜩 가득한 내용들이나 적고 있을 때인가 하는 현실적인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잊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에게도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은 해주어야지 하는 처음으로 가져본 위로인 척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나와 비슷하게 그저 혼란스럽고 잘 모르겠는 생각들에 휩싸여 그저 하루가 지나가도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고 어떤 때는 열심히 산 것 같은 나의 하루를 응원했다가도 어떤 때는 이것밖에 못하냐며 스스로를 윽박지르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차피 우리 다 공평한 시간의 양 속에 살아가고 있고 그게 인생에서의 같은 시점은 꼭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어려운 시간 속에 잠시 머무르는 상황이라면 "나도 같은 처지예요."라는 걸 장황하게 글로 써 내려간 사람이 옆에 한 명쯤 있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랬으면 하기도 하고.)


한 순간이라도 나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으로 이어지는 글이 있었다면 일단 성공은 성공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어쩔 수 없지만.)

순간이 모인 합이 우리들의 인생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나에 대해 생각한 순간들이 모여 나에게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딱히 그 방법 외에는 뾰족한 좋은 수를 찾지 못했다.

의지가 생겼다면 그 의지의 끈을 놓치지만 않고 잘 가져가기만 해도 그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아직 정신 못 차렸나 보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데 하시는 분들은 조용히 지나쳐주셔도 좋다. 도움이 안 되는 소리들만 가득할 거다.

화려하고 유려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고 기억에 탁 박히는 표현도 하나 없이 글로서의 매력은 한없이 부족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정도면 될 거라 믿었고 진심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았다.

그리고 풍족하게 배부르게 해 줄 수는 없지만 아주 허기진 사람에게 한 모금으로 잠시 배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영양 공급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은 욕심이고 주제를 모르는 것일 테니.

그렇게 잠시 허기짐을 채우고 다시 나아갈 수 있으셨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본질과 나를 알아가는 중인 당신에게 스스로 믿음을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흔히 잊어버리고 사는 당신의 지금, 그리고 오늘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잠시 밖에 있던 방점을 다시 내 안으로 가져올 수 있는 회심의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어차피 정답은 없고 내가 정답을 만들어가는 여정임을 알아갈 수 있는 순간이었다면 좋겠다.

내 안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것보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지기를 소망한다.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인생임을 다시 한번 새기는 다짐에 한 줌의 도움이 되었다면 충분하다.

나에게도 반드시 나만의 정답이 있을 것임을 믿고 용기 낼 수 있는 조금의 응원이 됐다면 감사하다.

본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조금씩 시작할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늘의 하루가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오늘이 되었다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지금의 나여도 괜찮다고 믿어주고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하루들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들이 당신에게 찬란한 순간의 합을 만들어주기를 기도한다.


당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모르는 내가 당신을 믿고 의지한 만큼 이제는 적어도 그만큼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을 믿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내가 당신을 믿는 것보다 당신이 당신을 더 믿을 것이다.





* 그동안 '당신이 당신을 믿는 것보다 더' 연재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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