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적 경향성
이건 제가 한 거 아닌데요? 그건 제가 한 거예요!
본능적인 육감으로 '이건' 안된 것, '그건' 잘된 것이구나 알 수 있다.
칼같이 잘한 것은 내 덕, 잘못된 것은 나와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쩌면 자연스럽다.
김경일 교수님의 '부의 심리학'에서 귀인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시는 부분에 해당 내용은 자세히 적혀있다.
내부 귀인은 어떤 결과나 행위의 원인을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성향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외부 귀인은 그 결과나 행위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 환경에 두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부와 외부 귀인에 있어서 일종의 편향적 경향성을 보입니다.
- 김경일, '부의 심리학'
이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남 탓으로 치부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이는 대부분의 경우나 사람들에서 나타나고 내가 이룬 것에 대해서는 장황한 나의 노력과 애씀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지지만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음'을 명료화하기 위한 정당성과 핑계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상하다기보다는 보고 있으면 조금은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고, 저러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거듭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하다. 그런데 대부분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전형적으로 앞으로 성장할 이들의 싹을 잘라버리는 경향성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떤 실패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먼저 자기 자신은 무엇을 실수하고 어떤 책임이 있을 수 있는지 돌아보게끔 하는 규칙이 아예 있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스스로 실패했을 때도 자기 자신이 어떠해야 했었는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돌아보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늘 있다면 굳이 이런 이야기들과 책에서 언급하는 주의해야 할 사항 같은 것은 애초에 필요 없지 않았을까.
다들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이것을 넘길 사람이 누가 있을지를 자연스럽게 찾으니 말이다.
나는 그렇지 않아.
안타깝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바로 당신이 그 주범일 가능성도 꽤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식상할 지경인 메타인지와 자기 객관화라는 것은 이럴 때 가장 적절히 쓰일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병적으로 예민하고 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정하는 순간 정말 모든 책임이 나에게 다 뒤집어 씌워질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자기 방어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 틀린 말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은 원래 다 나약하고 간사한 법이니까.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용감하게 마주하고 인정한 후에 객관적으로 어떤 것이 잘못되었음을 이해하고 다음번에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들이는 사람이 반드시 성장하지 않을까.
오늘은 누가 나의 사냥감이 되어 줄 것인가, 어슬렁대면서 누가 잘못하는지만 살펴보고 눈여겨보는 사람이 과연 본인 스스로에 대한 성장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 얍삽한 사람이 위로 더 잘 올라가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꼭 위로 올라간다고 그게 또 성장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늘 그렇지만 진지한 사람들은 늘 모든 주제에 진정성을 담기를 원한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성장'이라는 것도 진정성 있는 스스로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날로 먹을 수 있는 치트키 같은, 남의 치부를 들추어내고 살포시 내 잘못을 덮은 후에 얻은 과실 같은 것들을 진정한 '성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꼭 남 탓이나 상황 탓을 생각하다 보면 금방 머릿속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수능 때로 돌아간다.
뭘 잘한다고 수능을 세 번이나 본 본인으로서는 참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현역 때의 수능은 격변의 시기였다. 등급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행되어 아마 이때만큼 수능 성적표를 가장 짧고 간결한 형태로 받았던 세대도 없을 것이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어쨌든 그렇게 늘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추위를 뚫고 갔던 낯선 고등학교의 교실에서 이제 막 외국어영역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초콜릿을 한 입 물고 따뜻함 속에서 몰려오는 졸음을 뿌리치고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시험 시작 후 영어 듣기 약 5번쯤을 풀고 있었을 때였나, 시원하게 터지게 되었다.
꼬끼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닭을 키우는 학교가 있었고 나는 이런 일이 내 생에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철저히 모든 경우의 수와 천재지변을 예상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우리는 편향적 경향성을 피해야 하니까.)
외국어영역 때문에 나의 현역 시절 수능이 망한 것은 아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고 지금에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가채점을 마치고 바로 '재수'를 하겠다며 선언한 나의 마음속 한편에는 솔직히 닭을 키우는 그 고등학교의 닭장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닭의 잘못이지. 라면서 마음을 위로했던 것 같다.
덕분에 재수 때도 시원하게 시험을 말아먹었던 것 같고, 세 번째 본 수능은 더 말하지 않겠다.
(삼수 이상 하신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방어막은 다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방어막이 정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막인지 아니면 진정한 잘못을 스스로 알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는 방어막인지는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우리가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핑계, 변명, 남 탓, 책임회피, 등 많은 방법과 단어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단어들과 친해지는 순간순간은 참 편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근데 그 편안했던 마음이 정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편함이었는지, 내가 정말 편해질 수 있는 선택이나 생각이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핑계임을 알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틀어막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위한 레드카펫을 깔아주는 그런 선택이었지 않았을까.
왜 꼭 그렇게까지 내 마음 불편해가면서, 나 불편해가면서 성장해야만 해요?라고 묻는다면 사실할 말이 없지만 김경일 교수님의 말을 한 번 더 빌리고 싶다.
제가 성공을 기술하고 실패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미 실패로 끝난 일을 왜 굳이 들추어 불편하게 만드느냐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죠.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빼고 성공의 이유를 묻는 과정이, 실패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요인만 가지고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 말이지요.
- 김경일, '부의 심리학'
성장하고 싶지 않은 분들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누가 꼭 알려줘서가 아니라 나의 탓, 나의 책임을 온전히 설명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멋 아닐까.
또 그렇게 하려고 해도 진정성 있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는 시간은 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아마 그렇게 하다 보면 나 스스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내 덕분에 이번 일은 성공했다면서 나의 성장과 우리의 성공을 진정성 있게 축하해 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한 번 믿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