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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면 된다.

어차피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by 이일일


망한 것 같은데요. 저 어떡하죠?



그래서 이대로 그만할 건가?

장렬하게 전사했음에 박수쳐주는 영웅대접은 현실에서 크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상대에게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전반전이 지나가는 데에도 전술을 바꾸지 않고 맞불을 놓아 4:1로 지는 게임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때는 박수를 쳐주지만 결국 진 것은 진 것이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대로 멈추어 주저앉아 있으면 그냥 그 정도 수준으로 밖에 끝나지 않는 것이고 인생도 마찬가지이지만 회사에서의 성과나 나의 결과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주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론적인 이야기인 것처럼 결과가 좋지 않다면 이유는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다.

그냥 운이 나빠서 핑계를 어떤 것을 대더라도 잘못은 어느 정도 내 안에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의 실수나 잘못이 내 인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치거나 하기는 쉽지가 않다.

어떤 종류의 잘못이나 실수이냐에 따라서는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맡은 직무 내에서 하던 일에 차질이 생기는 것에 법적으로 어마어마한 문제가 생길만한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을 사회 초년생에게 맡겼다면 그런 회사도 문제가 있겠지만 아마 책임은 위에서 질 수밖에 없거나 그럴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책임 없다는 태도를 취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 일로 크게 좌절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상처나 후회를 마음속에 담지 말자는 것이다.

원래 인생이나 뭐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럴 때는 좀 멀리서 볼 필요가 있다.


주저앉아서 이건 어때서 그랬고 저건 어때서 저랬고 이유와 문제를 따져보는 것은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 앉고 하는 것이지 주저앉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서 꿋꿋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주저앉아서 이것, 저것 이유를 밝혀가면서 따지고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배경과 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는 시간은 따로 주어질 테니 넘어진 순간에 그러고 있는 것은 민폐다.

그렇게 다시 하면 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겨내야 하고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 옆에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면 좋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점점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고 함께 일어서서 걸어주고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객관적인 것이 좋고 필요한데 사실 세상은 조금 더 차가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공연이 오픈이 되는 상황이나 어떤 서비스가 런칭이 되는 상황은 늘 비슷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괴팍한 고객이 아니라면 문제가 생기는 상황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와 태도는 비슷했던 것 같다. 맞닿아 있는 고객이 완전 꼭대기에 있는 대표가 아니라면 어차피 그 사람도 이 프로젝트를 잘 끝내야 하는 사람이기에 비슷한 긴장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오픈 전에는 함께 덜덜 떨었다.

물론 오픈 직전에 문제가 생기면 한숨이 땅을 꺼지게 만들기도 하고 감정이 앞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며 소리를 지르고 책임을 묻는 고객도 있었지만 결국 방법은 한 줄기였던 것 같다.

다시 일어나고 솔직하게 오픈해서 상황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더 좋고 효율적이며, 효과가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천진난만하게 이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솔직하지는 않았다.)


다시 해야죠. 뭐.



사람들마다 당연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다.

어려운 상황이 나오고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어쨌든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렇다고 그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결정권한이 있지도 않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빨리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하는 것만큼 지금의 상황에서 현명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몇 번의 경험이 더 그렇다는 것을 잘 알려주기도 했을 테고 어쩌면 그렇게 실수하고 잘못을 저질렀던 자신의 과거 신입시절이 생각나서 더 마음이 짠할 수도 있다.

(모든 고객이 마음씨가 따뜻한 건 아니다.)

그런데 진짜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기는 하다.


한창 전시를 준비하고 총괄할 때 전시 컨텐츠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오픈 일자를 맞추지 못하면 늘 써먹던 방법이 있다.


오픈 준비 중입니다.


나에게는 다시 일어나서 다시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고객에게도 가장 빠르게 설명하고 상황을 수습해서 다시 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은 못한 것 대로 죄송한 것이고 나의 책임이고 나의 실수이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컨텐츠를 포기하고 아예 내보내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돈을 내고 보러 오시는 모든 분들께 죄송한 일이기도 하고 기대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것도 빨리 인정할수록 이후의 대처에 가치가 부여가 된다.

더 빠르게 대처하게 되고 그렇게 해결의 시점이 뒤로 가는 것뿐이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다시 일어나서 다시 하고들 한다.


단 한 번의 실수와 잘못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인생에 존재하지 않고 회사생활에는 더더욱 없다.

(물론 범법을 저지르는 것이나 아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제외하겠다.)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한다.



혹시 어려운 문제에 처하게 되거나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꼭 명심하자.

어차피 다시 일어나야 하고, 그렇기에 다시 하면 된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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