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를 내려놓고 산 시절이 별로 없는 나에게 훌라는 쉬운 춤이었다. 처음 강습을 듣던 날부터 학기 내내, 강사님은 이번 수강생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라며,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퍼부어주셨다. 나는 내심, 나를 두고 하시는 거라 자만하며 소리없이 환호했다. 스텝을 제대로 맞춰야 하는 스윙댄스나, 복잡한 동작을 순차적으로 맞춰서 해야하는 방송댄스에 비하면 훌라는 거저 추는 춤 같았다.
강사님께서도 그랬다고 하셨다. 오랜 댄스 전문가인 선생님은 훌라를 보고 금방 배울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오만함이었고,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처음엔 잘못된 동작으로 화려한 몸짓을 만들어냈었고,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잡아야한다고 여러차례 강조하셨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강사님은 계속해서 배우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가졌던 자신감에 물음표가 달렸다. 나는 댄스학원 원장도 아니었는데, 내가 오만하면 안되겠구나. 마음을 단디 고쳐먹자. 이런 마음으로 상황을 보니, 강사님이 칭찬하시는 건 내가 아니고 반장 언니인 것 같았다. 강사님이 나를 염두에 두고 모두를 향해 지적사항을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흠흠.
굳이 잘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즐겁게 하면 되지. 일단 동작 자체를 틀리지만 말자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 강사님과 같은 우아한 움직임은 내가 지금 욕심낼 수 없는 것이니까. 어린이집 율동 공연처럼은 보이지 않도록, 할 수 있는만큼 내 모습이 우아하다고 상상해보자. 공연 후 찍힌 영상을 보면 부끄러움이라는 그물망이 나를 덮쳤지만, 애써 틀린 부분이 하나 뿐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하와이하다>의 저자가 훌라댄스 수업 세 달째에 쿠무(훌라 스승)에게 들은 말이 있다.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실수를 하잖아.
실수한다는 건 좋은 징조야.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거거든.
노력하니까 실수도 하는 거야.
실수를 하고 나면 틀린 걸 알게 되고,
그럼 고칠 수 있거든.”
- 신현경 <하와이하다>
'잘' 추려고 추는 것이 아니다. 훌라가 좋으니까. 그저 추고 싶어서, 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고 싶어서 춤을 춘다. 물론 잘 추려고 노력은 한다. 다른 사람과 맞춰서 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즐거움과 성장이 가득 담겨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3년차가 되니, 새학기 신입생은 나에게 얼마나 훌라를 한 건지, 왜그리 잘 추냐는 질문을 한다. 오..오래 한 사람이 되었어요. 나랑 같이 시작한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으니 나만 오래 한 사람이다. 내가 쑥쓰러워하는 와중에 강사님께서 말씀하신다.
“안그만두면 다 잘 추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그만두지 말고 계속 춤을 추면 됩니다.”
그렇다. 그만두지 않고 남아있으니 어느새 나는 잘 추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거다. 아직 정진할 길은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안 배운 곡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물론 바로 추라고 하면 통째로 외우는 곡은 단 두 곡 뿐이지만.
매일매일 혹독하게 연습하는 게 아니고, 매주 한 번, 그나마도 다른 일정들이 많아서 한 달에 한 번 갈 때도 있지만, 공연 때 몰아서 열심히 하기도 하니, 띠엄띠엄이라도 이렇게 꾸준히 해나가면 10년 뒤에는 쿠무 소리 듣는 훌라인이 되어 있을지 누가 알까? 죽을 때까지 할 거니까 언젠가 난 초초고수가 될것같으다. 훗.훗.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