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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하와이에서 훌라를

by 명랑소녀



2023년 1월. 꿈에 그리던 하와이를 다녀왔다. 남편이 육아휴직한 동안에는 국내여행만 간단히, 그것도 아이들이 꿈에 그리던 테마파크만 다녀오고 말았다. 국내여행하는 동안 산길에 미끄러지며 넘어져서 비골골절상을 입었다. 두 차례 철심박고 빼는 수술을 통해 회복하고 나서 훌라와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문자 그대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2022년 가을의 어느 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세계여행은 아니더라도, 나는 하와이라도 가야지 평생 후회가 안남을 것 같다고. 당신이 영 안 내킨다면, 아이들만 데리고 셋이서만이라도 가겠다고. 나는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나를 위해.


남편은 홀로 지내는 걸 싫어한다. 내가 애들 데리고 간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지 순순히 가자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여러달 전에 항공권을 예매했다. 코로나가 풀리면서 항공권이 어마장장 비쌌다. 훌라 강사님께서는 저가항공이 다니던 시절보다 두 배 비싸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가야했다. 이 때가 아니면 다시 타이밍을 잡을 수 없을 거였다. 아이들은 훌쩍 커버릴테고, 나의 훌라 열정은 지금 하와이를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남편은 재택근무로 일을 하고 있었고, 회사는 때마침 해외 근무도 일정 기간동안은 가능하다는 방침을 정해주었다. 세상은 우리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움직이는구나! 하와이 여행 일정은 2주. 남편은 1주일은 휴가를 내고 1주일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다. 그 일정에 맞춰서 두 군데 숙소를 잡았다. 1주일은 작은 리조트로, 1주일은 1.5룸의 에어비앤비 숙소로.


차 렌트비와 주차비가 상당하기에 차를 빌리지 않고, 그저 와이키키만 만끽하기로 했다. 가끔 다른 지역을 가고 싶으면 하루만 렌트카를 쓰기로 했다. 하와이를 2주나 간다면 마우이섬이나 카우아이 섬까지 가야하는 게 아니냐고 누군가는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스타일 대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여행한다. 아이들은 제주에서 여름내내 물놀이를 했는데, 겨우 내 하지 못할 물놀이를 위해 하와이를 선택했다. 그러니 물놀이만 주구장창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은 느지막히 일어나서 배를 채우고 바다에 나가 종일 놀다가, 리조트로 돌아와 리조트의 작은 수영장이 문 닫는 저녁 7시까지 끝없이 놀았다. 이 일정을 삼사일 하고 나니,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좀 지겨움이 일었다. 근교로 차를 빌려서 놀러가자고 꼬셔서 일정을 잡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빗속에 하와이 해안도로를 달리며 곳곳을 구경하고 다녔다. 원했던 스노클링은 못했지만, 하와이 구석구석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물놀이 일정이 계속되고, 나는 지겨움이 커졌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나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훌라 강습을 듣고 싶었는데! 짬짬이 검색을 하다가, 드디어 발견을 했다. 와이키키 해안가에 있는 커다란 쇼핑센터에서 무료 훌라강습이 매주 화요일 오전에 열린다는 것을. 며칠만 기다리면 갈 수 있겠구나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겼다.


남편이 일할 숙소로 옮긴 후였다. 남편은 시차때문에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근무를 했다. 오전엔 아이들과 있을 수 있으니, 내가 훌라 강습을 받는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며칠 전 부터 예고를 해두고 아침을 차려준 후, 엄마는 다녀오겠다고 하니 아이들도 남편도 싫어한다. 잠옷인 채로 아침을 먹고 있던 아이들이 다 차려입고 나가야하는 나에게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시간이 정해져있으니 안된다고 했다. 엄마 어디 가는 지 안알려줄거라고 했더니 둘째는 울상이다. 일단, 행선지는 알려주고 시간이 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며 아이들을 떼어내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


마음은 급해서 종종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저 멀리 뒤쪽에서 “엄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니 아이들이 잠옷 차림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고작 두어 시간을 혼자 보내게 내비두질 않는 아이들이라니! 너무하지않나! 분노는 최대한 감추었지만, 짜증섞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너네 왜 이래~! 엄마 좀 가게 해줘”라고 하니, “인사하러 왔어~!”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인사를 해야하니” 라는 말은 꾹꾹 참았다. 그렇다면 인사를 후딱 해치우자! 재빨리 두 아이를 부둥켜안고 쪽쪽쪽 부비부비 해준 후에 속소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인사 했으니 어서 가렴! “엄마, 재밌게 하고 와~!”라고 말하며 아이들은 잠옷 차림으로 나온게 부끄러운 지 바람처럼 뛰어서 사라졌다.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와이키키를 걸었다. 훌라 레슨 받으러 가는 그 길이 하와이 온 이래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절로 셀카를 찍게 된다. 왤케 즐겁지? 발걸음이 방방대며 떠올랐다. 바람처럼 날아서 어느새 수업 장소에 도착. 수업참가명단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이름을 적었다. 벤치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수업 시작을 알려준다. 다양한 얼굴색의 사람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도 다 달랐다.


나는 제일 앞 줄에서 강사님의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백발의 우아한 훌라 강사님은 붉은 무무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학센터에서 들려줄 법한 느리고 또박또박한 영어로 말씀해주셨다. 기본 스텝을 휘리릭 알려주고, 바로 노래가사와 함께 손동작을 알려주셨다. 저 산에서 내려온 남녀 댄서들, 물고기를 잡으며 노니는 하와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노래였다.


즐겁게 배우고, 강사님은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무대 한쪽에 휴대폰을 뒤집어 세워두고 셀프 영상 촬영을 하며 추억의 시간을 담았다. 어느새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게 아쉬울 즈음, 저 앞에 아이들과 남편이 보였다. 아이들이 나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오! 타이밍 좋은데! 이쁘게 잘 찍어주길 기대하며 마지막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였다.


“엄마, 엄마가 제일 잘 추더라!”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내게 달려오며 말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래? 엄마가 배운 세월이 얼만데 처음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잘 춰야할크라” 다같이 맛집을 가자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충만한 행복감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버킷리스트 하나 완성했도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수업 후 행복감보다 혼자서 수업들으러 걸어갔던 그 순간의 행복감이 열배는 더 컸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게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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