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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 (해초) : 해초예찬

by 명랑소녀


제주로 이주한 첫 해에 제주돌미역을 처음 먹어봤다. 해산물 식당에서 반찬으로 돌미역무침이 나왔는데 맛이 잘도 좋아서 하영 먹었다. 분명 미역은 미역인데 살면서 못 먹어 봤던 오돌토돌 두꺼우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인 신선한 미역이었다.


어느날 저녁 딸램 친구 아버님이 오셨다. 오늘 따온 미역이라면서 검은봉다리 한 가득 미역을 주고 가셨다.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날 만큼 많은 양이었다. 앞집 언니에게도 나눠주고, 뜨거운 물에 삶았다. 표면이 끈적끈적해서 영 식감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상하다 싶어 친정엄마에게 물어보니 열심히 치대서 빨아야한다고 하네. 특히 미역귀는 엄청나게 많이 빨아야해서 먹기 힘들거라고 했다.


엄마는 전화 말미에, 뭔가 회상하듯 바로 딴 미역은 맛이 참 좋다는 말로 부러운 마음을 살짝 보였다. 내 고향은 욕지도. 친정 엄마는 경기도 평택 바닷가마을에서 전기도 안들어오는 깡시골 섬마을로 시집을 왔다. 나고 자란 곳도 바닷가고 시집간 곳은 섬이니 바닷먹거리에 친숙한 엄마다. 돌미역은 싱싱한 채로 육지로 올려보낼 수가 없으니 내가 대신 엄마 몫까지 열심히 먹어야겠다.


찌든 때가 가득한 옷을 빨듯이 열심히 빨고 코?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 때쯤 물에 넣어 삶아서 초장에 찍어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아름다운 코사지를 연상케하는 미역귀는 남편이 애정했다.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며 연신 씹어댔다.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굴 한 주먹 넣고 끓이다 들깨가루로 마무리한 미역국은 아이들의 최애반찬. 뽀얀 국물에 밥 말아서 아침밥으로 주면 일품요리가 부러울까. 바다에 친숙해지면서 아이들이 싱싱한 미역을 주워오기도 하고, 내가 바닷속에서 따기도 하며 이따금씩 찐으로 맛있는 제주돌미역을 먹곤 한다. 사랑한다 미역아.


미역만큼 사랑하는, 톡톡 터지는 느낌이 먹고 먹고 또 먹게 만드는 톳. 친정 엄마는 톳 두부 무침을 자주 해줬는데, 어렸을 때부터 즐겨 먹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자주 해줬는데, 제주에 와서 더 다양한 톳 요리를 접했다. 톳주먹밥과 톳김밥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만점이었다. 초장, 된장, 간장, 고추장 다양한 양념의 톳무침도 나는 어딜 가나 두 그릇 뚝딱 해치웠다.


육지에서도 익숙했던 미역과 톳, 다시마 외에도 꼬시래기, 몸(모자반)과 같은 다양한 해조류를 식생활에 깊숙이 가져온 제주 문화 속에서 살면서 해초들과 더욱 친해졌던 어느날, 훌라 수업에서 새로운 노래를 배웠다. 제목이 “Ka Uluwehi O Ke Kai”(Plants of the Sea)였다. 내가 좋아하는 그 해초들이라고! 하와이에서는 해초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구나! 음악도 신나고 안무도 즐거운 곡이었다. 유투브에 찾아보니 남녀커플이 결혼 피로연인듯한 장소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었다.


미역, 다시마, 톳 다양한 해초들이 바닷가에 가면 널려있다. 취향대로 골라담자. 대강 이런 가사인데, 강사님 왈, 해초들을 다양한 스타일의 미녀들에 빗대어서 표현했다고 봐도 된다고. ‘저 넓은 바다에 여러 종류의 향기롭고 사랑스러운 해초들이 있고, 그 해초들을 내가 다 따서 꽉 엮어서 다 먹어버릴 테야!’라고 노래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농염은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 뜨허. 이런 뜨거운 하와이 사람들 같으니!


이 곡을 출 때면,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미역 주웠던 일, 커다란 미역을 삶아서 딸램 둘이서 커텐처럼 네 손으로 펼쳐들고 구석부터 먹어들어가며 먹방 영상을 찍었던 일이 떠오른다. 함덕 바다 멀리 갯바위에 붙어있는 톳을 뜯어다가 데쳐먹었던 일도, 둘째 아이가 백사장에 떠다니는 초록 해초를 정성스레 모아서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던 일도 떠오른다. 그 해초들은 먹을 수 없는 풀들이라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면서 내 말을 못믿는 눈치이길래 집에 가져다가 끓이고 또 끓여도 못 먹는 맛임을 직접 증명했던 일도 눈 앞에 그려진다.


맛있고 식감 좋은 해초들을 생각하며 즐거운 이 곡에 몸을 맡기며 신나게 한 판 춤을 추고 나서 집에 돌아갈 때면 차안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저녁 반찬으로는 쌈다시마를 꺼내볼까? 아니면 미역 줄기 볶음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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