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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by 명랑소녀







경주 수학여행 무대. 후끈 달아오른 열기 속에 마음 만으로는 내가 듀스의 현도라고 생각하며 온몸을 불사지르며 춤을 췄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로 시작하는 듀스의 <우리는> 공연을 위해, 친구들을 불러모으고, 안무를 공부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지난 시간들이 허투루 돌아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실력이 출중한 힙합 댄서는 아니었다. 그냥 즐거운 만큼만 하는 고등학생 소녀였다. 듀스처럼 추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팔, 다리와 배에 근육이 필요했는데 없었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대로 내 몸을 최대한 맞춰보려 했으나 그저 안되는 걸 애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


듀스를 엄청 좋아해서 테이프를 늘어지게 열심히 들었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이 저절로 귀에 들릴 정도로 듣고 외웠다. 자율학습 빼먹고 난생처음으로 갔던 콘서트도 듀스였다. 중저음의 스피커에서 퍼지는 파장이 땅을 타고 흘러와 내 온몸을 울렸다. 지금도 그 울림이 생생하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의 몸짓은 부럽고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대학에서는 문선이라는 댄스를 만났다. 민중가요에 붙인 단체 댄스였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라인댄스인 셈이다. 여러 친구들과 같은 동작을 하며 가사의 의미를 새겨가면서 춤을 추는 일이 공강시간에 내가 하는 활동의 팔할이었다. 나는 컴퓨터공학과였는데 문선에 푹 빠진 물리과 친구들과 어울리며 물리과방을 내 방처럼 드나들었다. 우리는 문선을 배워서 추는 것을 넘어 좋아하는 곡에 안무를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회 선거철이 되면 각자 한 곡씩 안무를 만들어보자며 우리만의 축제같은 시간을 보냈다.


천지인의 <밤바다>와 같은 절도있고 힘찬 노래에 맞춘 문선을 소화하고 싶었지만 내 몸으론 역부족이었다. 나의 히마리없어보이는 팔에 애써 힘을 쥐어짜는 모습이 아니라, 잔잔하면서도 강인함이 드러나는 쫀쫀한 팔근육이 있어야 문선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없는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었다. 꽃다지의 <노래만큼 좋은 세상>처럼 사랑스러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노라면, 내가 유치원생이 된 느낌이 들었다. 성인의 무게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가득 채워 연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즐거웠던 시절도 잠시. 2학년이 되면서 내심 어색하고 하기 싫어하는 내가 되었다. 학업과 취업이라는 바퀴에 갇히며 댄스를 하는 자에서 구경하는 자로, 댄스를 잊은 자로 변모해갔다.


회사를 다닌지 3년 정도 되었을 무렵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무얼하려고 지구에 왔을까. 뒤늦게 사춘기를 맞이한 나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긴 시간 사색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다 실연의 아픔을 크게 겪고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에 호주 여행길에 올랐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며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무언가를 떨치고 오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26살의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경로에서 이탈해보고 싶었고, 스스로 도전해서 우뚝 설 수 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같다. 호주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커피 한 잔 값도 아껴가며 타지생활하는 어려운 시간도 보냈고, 타지에서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좋은 현지인들을 만나 우정을 쌓기도 했다. 어느 저녁, 나를 보둠어준 호주 식구가 내게 송별회를 해주던 자리였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칠 즈음 음악이 나왔고,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할 거 없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와우! 그것도 남녀가 함께 짝을 맺고 추는 소셜댄스였다. 이런 신세계가 현실에 있다니!

마음에 커다란 쓰나미가 끝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심장이 방방거렸다.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소리없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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