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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명랑소녀








선선한 2월 초 해 뜨기 전 하와이 아침. 와이키키 해안과 가까운 작은 호텔 방을 나왔다. 하와이에 와서 머문지도 어느덧 2주가 다 되었다. 오늘은 마지막 여유있는 아침. 평소라면 운하를 따라 달리기를 했을테지만 오늘은 걷고 싶었다. 비가 내려 말갛게 씻겨나간 후의 청랑감을 천천히 흠뻑 음미하기엔 속도를 늦추는게 필요하니까.


평소보다 다이아몬드 헤드가 더욱 선명히 보였다. 하와이의 날씨는 돈주고 사서 제주로 가져가고 싶을만큼 욕심이 났다. 어스름한 새벽하늘을 병풍처럼 두르고 걷기 시작했다. 가벼운 걸음 옆으로 작은 까마귀 한 마리가 길동무를 자처하고 나섰다. 안녕! 알로하? 까마귀와 발걸음을 맞추며 걸으니 골목 구석구석 심어놓은 히비스커스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흰색에 어떤 꽃은 여러 색을 섞어 놓기까지 했다. 히비스커스를 훌라치마 문양에 넣는 이유가 과연 있었구나. 이 화려함을, 자연이 빚어놓은 아름다움을 담고 싶은 하와이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급, 훌라하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하와이에 와서 훌라를 배우고 싶었던 소원은 며칠 전에 원데이 강습으로 풀었지만, 와이키키 바다에서 훌라하겠다는 소원은 아직 못 풀었지않나.


지금 해볼까?


해가 뜬 뒤라면 바닷가에 사람도 많을테지만, 딸들과 남편도 눈을 뜰테니. 혼자인 지금이 재미난 도전을 하기엔 더 어울리는거지! 세상 부끄러움이 많은 둘째는 엄마가 바다에서 춤을 춘다면 뜯어말리고도 남을거야. 남편은 모르는 사람인양 저 멀찌감치 떨어져 있겠지. 첫째는 나랑 같이 춤을 출지도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게 분명해.


그래, 지금이야!


훌라치마를 입진 않았지만, 일단 치마를 입고 있으니 굿! 휴대폰도 가지고 왔으니 음악도 틀 수 있지. 완벽한걸! 구경하는 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내 흥에 겨워서 몇 곡 춰보자. 하와이에서는 나를 막지 말자.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자유를 만끽해보자. 내가 되고 싶었던, 모아나 할머니 예행연습을 해보는거야!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폭풍 생성되는 느낌. 악! 신나! 발걸음이 통통거리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조깅이 되었다. 핑크보랏빛 저녁노을 대신, 같은 빛깔의 아침노을을 배경으로 버킷리스트 하나 이루고 가자! 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순간을 장식해보자! 나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훌라를 진짜 하와이에서 내 온몸으로 느껴보자. 나를 살게한 훌라, 나를 쓰다듬어준 자연, 감사한 마음으로 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순간을 장식해보자.


혼자서도, 용기있게! 박력있게! 와이키키 바다를 향해 달려,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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