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댄스
호주에 터를 잡고 살고 싶은 마음이 막 새싹으로 움트려는 차에, 귀국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비자도 만료되어가던 터라 ‘일단’ 귀국을 했다. 하지만 ‘일단’ 돌아오고 나니 어느새 인생의 궤도에 올라타버려 취업하고 대출빚 갚는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즈음, 아는 언니가 남자친구를 인사시켜주는 자리에서 말하기를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춤추기 시작했고 거기서 남자친구도 만났다고 했다. 나에게도 어울릴 것 같다면서 추천해줬다. 댄스? 스윙 댄스? 그게 뭐야? 그네타고 춤추는 건가? 놉! 언니는 스윙재즈 음악에 추는 소셜댄스라고 하며 넌지시 수강신청 일정을 알려주었다.
처음 갔던 스윙재즈 바. 떨리던 첫 강습을 마치고 뒷풀이로 간 호프집에서 나는 호주에서 만났던 강렬한 설레임과 재회했다. 음악이 나오면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든 아는 사람에게든 춤을 청했고 남녀 한 쌍씩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이런 세상이 한국에도 있었다니! 나에게도 이런 세상이 열렸다는 것에 감복하며 매주 토요일이면 신들린 듯 강습과 뒷풀이에 열을 올렸다. 토요일만으로는 부족해서 평일 퇴근 후에 교대, 사당, 신사를 누비며 주화입마에 빠진다는 주 3, 4회 바에 가는 주4빠에 적을 올렸다.
두 달 주기로 강습이 열리고, 강습이 끝나면 졸업공연을 했다. 허름한 서울 골목 지하에 있는 연습실에 동기들과 모여서 늦은 밤까지 공연준비로 바빴다. 회사 동료들에게도 강추를 날려서 몇몇 분들이 같은 동호회인이 되었다. 단계를 올라가며 세 번의 졸업공연을 하고 끝없이 춤을 추다 1주년 공연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잠실경기장에서 개최된 스윙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넋을 잃고 무아지경에 빠진 나의 모습은 온라인 신문에 한 장의 사진으로 박제되었다. 비행기타고 날아가 참여한 제주 썸머 스윙 페스티벌. 어둑해진 바닷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춤출 때의 달콤함이란 꿀맛 그 잡채! “바다 + 춤 + 바람 = 핵꿀맛”이라는 공식이 각인되었다.
스윙이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라면 스테이크를 멋지게 장식해주면서 영양 균형도 맞춰주는 춤이 곁들여졌다. 바로 라인댄스라고 부르는 춤인데, 열지어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 뽀인트다. 스윙재즈바에서는 재즈음악이 3-4곡 나온 뒤, 라인댄스 음악이 1곡 나왔다. 재즈, 살사, 차차, 스윙, 방송댄스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하며 라인댄스가 있는데, 나는 어느새 라인댄스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집에 오면 늦은 시간까지 안무를 익히느라 작은 방구석에서 이티 머리만한 모니터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동호회에서는 라인마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고, 급기야는 라인댄스만 추는 라인댄스 동호회까지 발을 들이고 공연까지 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렇게 춤에 푹 빠져있었는데 지금 남편이 된 남자가 나에게 춤 고만추라고 성화였다. (남편은 나의 스윙동호회 동기다.) 한 번은 내가 울기까지 했다. “나 춤추러 가고 싶다고!”라고 외치면서. 나는 왜 울기까지 했을까. 그 남자 내비두고 가면 될 것을. 어쩌다보니 결혼을 하고 애를 둘이나 낳으며 댄스는 나에게서 다시 멀어져갔다. 간혹 남편이랑 술이 거나하게 취할 때 홀딩을 하고 스윙의 추억을 떠올려봤지만 내 남편은 이미 스윙의 시옷조차 남기지 않고 기억에서, 몸에서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