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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남편의 쓸모와 아내의 욕처방

- written by K

10월이다. 며칠째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스산하다. 내게 가을은 늘 못마땅하다. 겨울이라는 정해진 끝을 예감케 하고, 또 예비를 강요하는 시간! 이런 가을의 시간을 견딜 요량으로 몇 년 전까지는 쟈크 프레베르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고엽>Les feuilles mortes(Autumn leaves)을 듣곤 했다. 목소리가 실린 노래로는 이브 몽땅의 것만 들었고, 여러 재즈 연주자들의 버전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함께 모아 내리 듣곤 했다.
 
 내가 듣기에,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은 최고다. 이브 몽땅의 목소리가 쟈크 프레베르의 시를 가장 닮았다면, 마일스 데이비스의 악기는 시를 잊게 했다. 조금 더 비유적으로 말해보면 이브 몽땅은 시작한 곳이며, 마일스 데이비스는 멈춘 곳이다. 가을이라는 시간 속을, 나는 나만의 시작과 끝 속을 이렇게 오가며 견뎠다. 하지만 어느새 그 같은 ‘낭만적 망명’도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배고픔이 미각을 해치듯 강퍅한 현실이라는 폭군이 이 사소한 사치마저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뿔싸! 남편에게는 아내라는 이름의 ‘낭만 파괴자’가 또 하나 더 존재한다!
 
 친한 후배 부부 J와 I가 있다. 이른 은퇴를 하고 제주에 내려올 때 남편인 J의 의지가 강력했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J는 진즉부터 서울이 아닌 어느 곳을 오랫동안 찾았고, 드디어는 제주 서쪽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둘의 관계를 옆에서 보자면, 그의 아내 I가 J를 코 꿰고 내려왔나 오해하기 십상이다. I는 제주의 작은 서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열심히 찾아다닌다. 식물과 정원을 가꾸는 일을 좋아하고 서귀포까지 가서 식물 그리기 수업을 듣는다. 우리 부부와의 친분 역시 I의 관심과 방문으로 시작되었다.
 
 J는 주로 아내를 따라다닌다. 서점에 데려다 주고, 서귀포에 데려다 주고, 우리 가게로 데려다 준다. 집안에서도 늘 따라다닌다. 우리는 그런 그를 놀리느라 ‘미저리’라고 부른다. I가 서울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J는 집밖에도 잘 나서지 않는다. 동네 편의점 사장님이 그의 안부를 걱정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무기력한 사내인가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 그의 아재개그는 놀랍도록 재미가 있다. 순발력과 재치가 넘친다. 나는 정말이지 그 쾌활함과 넉살과 유머에 반한 사람이다.
 
 최근에 두 사람은 지난 추석을 기점으로 서울에 오래 머물렀다. I는 친정 부모를 간병해야 했고, J는 십 여일 먼저 제주에 내려왔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I는 완전히 달라진, 아주 낯선 남편의 눈빛을 봤다고 한다. 쾌활한 미저리가 아니라 세상에 염증을 느끼는 미저리의 눈빛이랄까.
 
 J는 온갖 사람들에 대한 역정과 불만을 간만에 본 아내에게 쏟아냈고, 모든 일에 싫증을 냈다고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평불만 투성이었다는 것이다. 직접 보지 않아서 잘 모르긴 해도, 분노와 무기력 사이에 위태롭게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도 환자가 있었네.” 


그리고 곧장 남편의 위태로움을 진단한 아내의 처방이 시행됐다. 


 “나를 이곳 제주도까지 데리고 내려와 놓고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 그러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대체 어떻게 해야 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그래서 약이라도 타와! 여기에 이러고 있으면 누가 저절로 괜찮아진대?”
 
 우다다다다 쏟아진 아내의 쇳된 외침이 남편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말인즉슨 아내의 말이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다고 남편은 느꼈다고 했다. 몸과 마음은 즉각적으로 다시 원위치로 세팅한 J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님, 약 처방보다 욕 처방이 훨씬 더 잘 들어요!”
 
 한바탕 크게 웃느라 정작 무엇이 그의 마음을 흩어 놓았는지 묻지는 못했다. 다만 내 식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J의 가을이 시작됐구나!
 
 이제 나의 가을 이야기. 고3 딸과 나는 친하다. 아니, 친하다고 생각한다. 제 엄마에게 한 번도 아빠가 이러저러해서 싫다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듣고 있기도 하다. 내 앞에서 한 번도 드러내놓고 심술을 부린 적도 없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딸은 나를 자주 부른다. “바퀴벌레를 잡아줘.” “비 오는 데 우산이 없으니 지금 당장 정류장으로 나와 줘.” 나는 부지런히 달려간다. 바퀴벌레가 사라지기 전에. 빗방울이 딸아이 교복 치마에 튀기 전에. 아이가 내게 속 깊은 얘기를 꺼내놓으리라는 기대 없이 간다. 그냥 불러주면 갈 뿐이다.
 
 아내는 나보다 늦게 침대에 올라온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한 시간 동안 요가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 놈의 요가, 나가라고 해놓고는 매일 하는 꼴을 내가 본 적이 없다. 밖에 있다가 다시 들어오면 아내는 여지없이 잠에 취한 채 마지막 명령을 하달한다. “딸은 다섯 시 반, 아들은 여섯시 반에 깨워 달래.” 시간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새벽에 빵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보통 네 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일어난다. 아내는 애들보다 더 아침잠이 많다. 식구들 깨우기는 온전히 나의 몫인 셈이다.
 
 문제는 누구도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들은 왜 안 깨웠느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볼멘소리를 하며 부리나케 아르바이트를 하러 뛰어나간다. 딸은……, 깨운 뒤 두 시간쯤 지나야 간신히 눈을 뜬다. 화룡정점은 이 난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아내가 부스스 눈을 뜬다. 얼마 전에는 왜 다들 깨워달란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지 한탄을 했다. 아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의미 없는 알람이네.”
 
 아내의 말에 나는 빈정이 더욱 상했다. 아내와 아들과 딸이 다 못마땅했다. “이제 나한테 깨워 달래지 말라 그래. 아니면 당신이 깨우던가!” 아내는 이번에도 무심한 한 마디로 나를 초토화시켰다. “원래 알람은 못 들을 거 알면서 맞춰 놓는 거야.” 내일은 또 내일의 종이 울려야 한다는 아내의 말이 나를 가을의 우울로 다시 빠져들게 한다. 나의 쓸모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그 옛날의 볼셰비키는 10월을 혁명의 계절로 만들었다. 혁명은커녕 알람도 못 되는 인생이여. 아, 가을 싫다! 아내의 정답도 싫다! 아내의 욕 처방은 거부한다. 그게 나의 낭만이다. J여, 낭만의 깃발을 나와 함께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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