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하루 세 번이 나쁩니까?

- written by K

2022년, 8월 말. 세금고지서처럼 코로나가 내게로 배달됐다. 수요일이었다. 친한 후배 S와 K를 불러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는데, S가 다음 날 아침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려왔다. 가게 유리창문을 사이에 두고 병원에 다녀오는 S와 대화를 나눴다. S의 얼굴은 붉었고, 눈은 왠지 슬퍼보였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게도, 후배가 가고 나니, 아내와 나는 몸에 열이 나는 것 같고, 오한이 드는 듯도 했다.
 
 부랴부랴 약국 몇 군데를 돌아 두 종류의 자가 키트를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테스트를 했다. 다행이 둘 다 음성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유난스럽게 다음 날도 또 검사를 하고, 그 동안 가족들과 거리두기 할 것을 명령했다. 하라면 해야 한다. 그 사이 미열과 통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기어이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코로나가 아니라 그의 고질병인 편도선염으로 나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둘 다 집안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그게 금요일 저녁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 내 차례였다. 토요일 아침부터 온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코로나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목이 아프거나 기침을 하지 않아서 그저 그런 감기몸살로만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 무렵이어서 병원을 가기에도 애매해 약국 감기약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아뿔싸! 몸 상태는 더 악화됐다.
 
 급기야 저녁에는 조기축구회 밴드에 눈물을 머금으며 글을 올려야만 했다. “감기몸살인지 코로나인지……, 이번 주 불참입니다.” 댓글이 달렸다. “형님, 몸조리 잘 하세요!” 그들이 부러웠고 또 미웠다. 월요일 오전에 결국에는 확진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왜 진즉에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타박을 해댔다. 몸은 바이러스가 괴롭히고, 마음은 아내가 괴롭히는 법이지, 그렇고말고! 일주일간의 자가 격리, 그렇다면 축구를 두 번 빠지게 되네. 아, 병든 몸이여!
 
 나는 일주일 격리 기간 동안 다락방에서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슨 심사였던지 아내가 침실을 내주겠다고 했다. “아니야, 당신이 여기 써. 나는 일주일 내내 잠이나 잘 텐데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TV와 에어컨이 있고, 못 읽고 쌓아둔 책들이 책꽂이에 가득한 방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늘그막의 호캉스일지 몰랐다. 나는 그 누군가처럼(<내 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에스트르) 내 방을 여행할 수도 있고,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긴 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쓸 수도 있으리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처럼 굴을 파서 탈출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격리의 완성은, 놀랍게도, 삼시세끼에 있었다!
 
 나는 타고난 삼식이다. 하루 세끼를 꼬박 먹어야 하는 종족이다.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다. 삼식이는 간식을 먹었다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같은 메뉴를 연달아 먹지 않는다. 밤참은 끼니가 아니니 챙길 수 있으면 챙기는 게 옳다. 내가 일평생 지키고 싶은 정체성이 있다면, 축구하는 남자로 사는 것, 그리고 세끼 먹는 남자로 사는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살면 살수록 삼식이의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다.
 
 아내의 단골 레퍼토리가 두 개 있다. “맛있는 음식은 사먹어야 한다!” “빨간 날은 두 끼만 먹자!” 나는 집밥을 좋아하지만 종종 외식을 했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처음에는 정말 빨간 날에만 두 끼를 먹었는데, 아내의 주부 구력이 늘면 늘수록 두 끼 먹는 날도 늘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빨간 날이 돼 버렸다. 그래서 나는 늘 허기지다!
 
 격리 첫 날, 나는 좀 감격적이었다. 당장 월요일부터 하루 세끼가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과일과 주스도 풍요로웠다. 화요일에는 확실해졌다. 나는 앞으로 일주일 내내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겠구나!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은 깨끗이 지웠다. 배부른 돼지가 될 수 있는데, 굳이 왜?!
 
 모든 가족들이 나의 격리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가운데, 아내가 나의 삼시세끼를 챙겨주었다. 오, 나의 아내여. 나의 천사여! 더러는 늦는 날도 있었다. 괜찮다. 가게를 닫을 수는 없어서 아내 혼자 커피도 팔고 책도 팔아야 하니까. 수요일까지 고열과 근육통의 여진으로 약간의 찜찜함은 있었지만, 세끼를 다 챙겨먹어서 그런지 크게 괴롭지 않았다.
 
 나는 축구와 예능 프로그램을 질리도록 봤다. 낮인지 밤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잤다. 세끼 식사만이 시간의 흐름을 구별해주었다. 배부르고 행복한 돼지에게도 신선한 공기는 필요해서 답답할 때는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아내가 끓여먹는 라면 냄새가 창문을 타고 올라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 나의 저녁 메뉴는 추어탕이었는데.
 
 그렇게 토요일이 되었다. 아내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 작자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것을. 차려준 밥을 먹으며 그저 뒹굴뒹굴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저 방에는 늙은 도새기가 서식하고 있다!’ 아내의 마음의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아침밥을 들고 오는 아내의 눈꼬리는 위로 올라가 있었고, 어제까지와 달리 밥은 부실했다. 그날은 하루 두 끼가 제공됐다. 과일과 주스도 끊겼다. 그래, 토요일은 아내가 정한 빨간 날이었지! 그리고 일요일은 모두의 빨간 날이고…. 섭섭했다. 나의 삼시세끼가 이렇게 5일 천하로 끝나다니. 격리 해제까지 이틀 밖에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까지 한결 같을 수는 없는 걸까?
 
 다행히 나는 격리 기간 동안 크게 앓지도 않았을 뿐더러 별다른 후유증도 없었다. 지난주에는 조기축구에도 참석했다. 신나게 달렸고 골도 넣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어딘가 아프다. 짧았던 나의 삼시세끼여! 나의 허기여! 아내에게 묻고 싶다. 하루 세 번이 그렇게 나빠? 아내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나의 ‘삼식이론’ 혹은 ‘삼시세끼론’에 대해 경악하고 비명을 지른다. “내가 정말 그렇게 나쁩니까?”

이전 16화 물고문과 김치찌개 20인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