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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물고문과 김치찌개 20인분

- written by C

온 가족이 함께 수영하러 다니면 좋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건강한, 화목한 로망 아닌가. 대학시절에 이미 수영을 배웠던 나는, 남편과 아들, 딸에게 강습을 받도록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딸아이는 수영장에 갈 때마다 신이나 들썩들썩 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들은…, 한라산만한 귀찮음을 등에 짊어진 듯했다. 나는 모른 척했다.
 
 몇 개월 지나 딸아이는 거침없이 물살을 헤치며 빠르게 월반 했고, 남편과 아들은 여전히 수영장 물을 과음하면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을 픽업하러 온 엄마들이 둥그렇게 모여 수영장 실내를 들여다보며 깔깔대고 있었다. “막 열심히는 허맨.”, “겅헌디 무사 앞으로 안 나감시니?!”, “둘이 사이는 좋은게.” 그들은 우리 집 두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이 부지런히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몇 개월 동안 키판도 졸업하지 못한 남편은 그날 무겁게 입을 뗐다.
 
 “이건 물고문이야.”
 
 결국 나의 로망은 물거품이 됐고, 두 남자는 각자 자기의 로망을 찾아 떠났다. 남편은 일요일 아침마다 조기축구 세계로, 아들은 밤이고 낮이고 축구게임의 세계로.
 
 조기축구의 세계는 신비했다. 그들은 새벽같이 모여 공을 차고, 차다가 싸우고, 싸운 뒤 화해하고, 함께 점심을 먹는다. 먹고 나면 누구는 당구를 치고, 누구는 축구를 또 했다. 주말마다 열리는 축구공화국의 충성스런 시민들이 사는 풍경이다. 남편은 마음과 달리 그 나라에 충성을 다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다. 겨우 일요일에나 온 식구가 모여 밥을 먹는데, 그 시간을 축구 나부랭이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었다. 팀원들이 해장국을 먹으러 갈 때, 남편은 가족이 먹을 해장국을 포장해 왔다. 그는 축구공화국 시민들에게 미안해했고, 한편으론 부러워했다.
 
 일요일 해장국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흡족한 식사는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일요일 점심은 해장국이라는 공식이 자동입력되고 있었다.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조기축구를 한두 번쯤은 거르고, 서투른 솜씨로나마 일요일의 요리사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는 내가 자신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한두 번쯤은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주기를 바랐다.
 
 물론 둘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지루한 참호전이었다. 전선은 정체됐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딸은 고등학생으로 일요일에도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축구 끝나면 사람들이랑 밥 먹고 와.” 남편은 거절했다. “아냐, 집에서 당신이랑 먹어야지.” 둘 다 절반의 진심이었다. 나의 노모와 우리 부부, 세 사람은 어떤 날은 해장국을, 어떤 날은 전날에 남겨둔 반찬을 다 때려 넣은 볶음밥을 먹었다. 일요일의 로망 따위는 바람 빠진 축구공 같았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실은 우리 둘 다 여럿이 밥 먹는 걸 좋아한다. 특별히 사교적인 편은 아니지만, 우정은 주로 밥 먹으면서 쌓는 편이다. 동네 친한 후배들 두엇과 함께 어울려 밥 먹는 시간, 너무 왁자지껄하지는 않고, 굳이 술을 곁들이지도 않는 그런 시간을 활력소로 삼는다. 가끔은 해먹을 때도 있지만, 근처 식당에 산책 삼아 걸어갔다가 다시 걸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떠난 식탁의 빈자리에 친구들을 채워 넣었달까. 나이가 들면 로망도 늙는 법.
 
 아니다. 나는 남편을 너무 쉽게 봤다. 그는 늙지 않는 야망을 가진 남자였다. “애들 크니까 식탁이 좀 쓸쓸하네.” 그가 말했다. “애들 말고 친구들이랑 놀 때지.” 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게 잘못 누른 버튼인 줄 그때는 몰랐다. 볕 좋은 일요일, 축구를 하고 돌아온 남편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이런 날 집에 사람들 불러서 김치찌개 먹으면 진짜 맛있겠다. 그치?”
 
 갑자기?
 
 “사람들? 누구?”
 
 “아니, 뭐, 축구팀이랑 밥도 통 같이 못 먹고 그래서….”
 
 “꼭 집에서 먹어야 돼?”
 
 “우리끼리 딱 모여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러지.”
 
 축구 한 팀이 아마 11명이었던가.
 
 “우리끼리가 몇이야?”
 
 “스무 명은 안 넘어.”
 
 “스무 명?!”
 
 “상대 팀도 오래 같이 찼거든.”
 
 평생 다섯 식구 밥상이나 간신히 차리고 살았는데, 20인분의 김치찌개? 그것도 상대팀까지. 그 동안 그는 축구공화국의 시민들과 밥을 먹는 대신, 성실하고 노쇠한 축구선수처럼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남편의 허튼 로망에 인상부터 쓰지는 않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런 부분까지 계산된 치밀하고 오래된 빌드업일 수 있다. 거절하기 쉽지 않은 알고리즘이었다. 설마, 이 남자, 다 계획이 있었어?
 
 결국 20인분의 밥상을 차렸다. 노회한 공격수에게 어이 없이 당한 듯이. 잡채와 반찬 몇 가지도 했다. 재료 준비에 정신이 없는 나를 두고 축구를 하러 가는 그의 등판에 ‘신남’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들이 중2시절 피시방으로 뛰어갈 때 저런 뒷모습으로 내 속을 뒤집었더랬지. 찌개가 다 끓을 무렵, 남편은 축구나라의 전우들과 상대 팀원까지 스무 명을 데리고 왔다. 의기양양했다.
 
 “그동안 밥 한 번 같이 못 먹은 게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쩐다’. 허세 쩐다! 남편의 허세에 사내들이 박수를 쳤다. 결혼한 뒤 두 번째로 행복한 표정이었다(언젠가 첫 번째로 행복한 일에 대해서도 쓸 기회가 있겠지). 이렇게 남편은 공을 차고 돌아오면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던 로망을 가족이 아닌 조기축구 회원들과 달성했다.
 
 『정치적인 식탁』에서 이라영은 “가부장제란 어머니의 밥으로 아버지의 법을 굴러가게 하는 제도”라고 했다. 그는 나의 밥으로 자기 세계를 굴렸다. 우리는 모두 ‘가부장제’ 말고 ‘가로망제’를 살아야 한다. 나의 로망과 그의 로망을 함께 굴려야 한다. 나는 그간 너무 안일했다. 결혼생활은 끊임없는 로망의 쟁투이기도 한 것을, 그것이 낡고 헤지는 동안에 맥없이 그냥 두었다. 그러니 나의 완패였다.
 
 먼지 쌓인 일기장을 꺼내 적어본다. 내년에는 그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리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리라. 여름에는 바다에 살리라. 우리 집 리트리버 금이와 모래사장을 뒹굴리라. 그는 우리를 실어 나르느라 이른 새벽부터 운전을 하게 되리라. 아니다. 나의 못다 쓴 로망이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피어난 꽃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로망은 뭘까? 젠장, 선뜻 떠오르지 않네. 2:0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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