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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Aug 10. 2021

'핫플' 이전 망원동을 지나 한강으로

우울한 땐 강변으로 산책... 그리고 비밀의 '샤우팅'

자주 한강까지 걸어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병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아마도 가야 했을 법했지만, 분명 우울증 비슷한 것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소화불량과 위장병은 나의 젊은 날을 빼앗아갔다.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불편했고 늘 뒤이어 따라다니는 더부룩함은 일상을 꽉 막히게 했다. 게다가 신체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바싹 말랐다. 덩달아 자존감도 떨어졌다. 병원에 가고, 한의원에 가고, 또 병원에 가고,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고, 대학병원에도 몇 번씩 갔지만 낫질 않았다. 반복되는 육신의 아픔은 정신적인 소진과 피폐로 이어졌다.


약보다는 그나마 걷는 것이 가장 속을 편하게 했다.

느지막한 오후에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강으로 향하는 길, 망원동으로 걸었다. 평평한 땅을 직선으로 걸었다. 서교동 방향으로 난 망원역 1번 출구에서 망원동이 시작되는 2번 출구 쪽으로 건너갔다. 초연하게 망원시장을 지나갔다. 아직 망원동이 ‘핫’해지기 전이었다. 그때는 아기자기한 카페도, 예쁜 상점도 없었다. 시장 쪽을 제외하면, 완연한 서민적인 분위기의 주거지였을 뿐이다. 다세대, 낮은 단층집, 연립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였다. 그래서 크게 한눈팔 거 없이 앞으로만 걸었다.


망원파출소를 지나 계속 걸어서 한강 근처까지 왔다. 높다란 담장 너머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변북로다. 저기를 건너면 바로 한강변이다. 육교를 올라 수없이 바쁘게 오가는 강변북로의 차량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한강(망원한강공원 부근)으로 건너갔다. (요즘은 육교가 없어졌다. 지하도로 간다)


온화하게 노을빛으로 물든 서울 하늘은 아름다웠다. 번잡한 일과를 마친 시간대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운동복을 입고 한강변을 뛰거나 빠르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강둑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연인도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한강이 바로 앞에 펼쳐져 있고, 왼편으로 양화대교, 더 멀리는 여의도, 63빌딩,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오른편으로는 성산대교가 물 위에 솟아 있었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강바람은 시원했고, 강렬함이 지나간 뒤 서서히 저물고 있는 연한 태양은 차분한 기분을 선사했다. 강가로 내려가, 한강 바로 앞에 서서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10분, 20분, 30분.... 강둑길 계단에 앉아서 한참을 ‘물멍’ 때리고 있기도 했다. 역시 마음이 가라앉을수록 밖으로 나오고 걸어야 한다. 우울감도 수면 아래로 조금씩 흩어지는 듯했다.


소리를 질러볼 수 있던 곳


그렇게 자주 한강으로 향했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까진 아니었지만, 운동 삼아 걷기에는 적당했다. 쳐지는 몸을 억지로 끌고 나오는 날도 꽤 있었다. 귀찮아서 방구석에 눌러 있던 적도 물론 적지 않다. 그래도 나와서 한 바퀴 돌면 확실히 기분이 한결 나아져서, 거기까지 이끌고 가기만 하면 후회한 적은 없었다.


서교동과 망원동에는 하고많은 골목길이 있는데, 한강으로 가는 행로는 일직선에 가까웠다. 서울 다른 지역에는 흔한 경사나 언덕도 하나 없이 평평한 코스다. 집에서 나와 망원역으로 가는 길(월드컵로14길),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망원시장으로 가는 거리(월드컵로13길)를 따라 그대로 쭉 걸으면 되었다. 그리고 망원파출소가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서 길을 건너면 강변과 연결되는 동네가 나온다.


망원동 주거지와 한강변을 잇는 강변북로 위 육교에 서면, 발밑으로 수많은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멈추지 않는 쌩쌩 달리는 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고속도로처럼 드넓고 신호등 없이 항시 차가 달리는 대로 위로 솟은 육교는 드물 것이다. 흡사 두 개의 세상을 연결하는 가운데 놓인, 차원을 달리 한 통로 공간처럼도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 가슴이 답답했던 날, 육교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도 지르는지 모르는 곳, 설사 옆으로, 앞뒤로 사람이 지나가고 있어도 씽씽 쌩쌩 차 소리만 들릴 뿐 알아채기 힘든 곳, 동네의 세계에서 강가의 세계로 넘어가며 들어온 진공 상태와 같은 통로였다.


서울에 그렇게 소리를 한껏 내질러 볼 만한 장소가 있을까?


윗집, 아랫집, 이웃집 눈치로 집에서는 못한다. 나는 가슴에 맺힌 불안과 우울을 밖으로 쏟아내 버리겠다는 태세로 육교를 걸으며 아랫배에서부터 숨을 모아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리고 한강으로 내려갈 때면 다시 입을 닫고 조용한 사람이 되어 불그스름한 노을을 차분하게 맞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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