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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Apr 11. 2021

‘이스털린 역설’의 진실: 돈은 행복을 살 수 없다고?



한스 로슬링은 왜 세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괜찮은 곳인지, 극빈층의 비율과 평균수명, 교육 수준, 백신 접종율, 재해 사망자 수 등 온갖 통계를 제시하며 공들여 설명했다. 이 모든 통계들이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은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고 응답했다(로슬링, 2019, p.76). 이런 괴리의 이유로 한스 로슬링은 우리의 인지적 본능인 '부정 본능'을 지목한다. 즉, 사람들이 세상을 오해하는 건, 세상을 나쁘게 보도록 오도하는 인지적 체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슬링의 설명이다.



하지만, 극빈층의 비율이 줄어들었다거나, 인류의 평균수명이 증가했다는 객관적 사실과는 달리, 세상이 좋아진다거나 나빠진다는 건 다분히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분명히 인류의 '객관적인' 생활수준은 눈부시게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주관적 측면의 변화도 눈부실까? 즉,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있을까?



그림1. 주관적 웰빙(캔트릴 사다리)의 추세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시민들의 삶에 대한 제 주관적 평가를 1점에서 10점 사이로 나타내는 '캔트릴 사다리' 점수는 2006년 5.311점에서 2019년 현재 5.106점으로 감소해, 약 10년새 사람들의 행복감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1). 한편, 같은 기간 동안 긍정적 감정은 유의미한 추세를 보여주지 않는 반면, 불안이나 우울 등의 부정적 감정은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그림2). 지난 십여 년 동안 빈곤율이 줄어들고 기대수명은 늘어났어도, 사람들이 더 불안해지고 더 우울해졌다면, 과연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림2. 긍정적 감정(좌)과 부정적 감정(우)의 추세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GDP나 기대수명에 비해 최근에서야 이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인류가 더 행복해졌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스티븐 핑커는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서 행복감도 함께 증가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사에 유례가 없었던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 지난 2세기 동안, 인류는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는 '행복'을 다루는 한 챕터의 상당 부분을 '이스털린의 역설'로 알려진 이론을 반박하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흔히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알고 있는 이론이다.



돈으로 행복을   있을까?” 물론,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조금씩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압도적인 긍정의 답이 예상되는 질문이다. 하지만, ‘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양보한  이렇게 한다. “그래, 찢어지게 가난하고 배가 고플 때에는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해줄  있는 돈이 소중해. 하지만, 부자가 되어서 물질적인 욕구를 충분히 해결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행복이 소득과 비례하지는 않아”.  가운데 누군가는 ‘이스털린의 역설 인용할 테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네이버 지식백과, 한경 경제용어사전)”이라고. , 일정 구간까지는 소득이 증가하면 행복도 따라 증가하지만,  구간을 지나고 나면 소득의 증가가  이상 행복을 증가시켜주지는 못한다는 . ‘이스털린의 역설 대해 설명하는 백과사전, ‘이스털린의 역설 인용하는 경제 기사, ‘이스털린의 역설 소개하는 교양 인터넷 채널 , 쉽게 찾아볼  있는 대부분의 자료들이 ‘이스털린의 역설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털린의 역설 그런 내용이 니다. 적어도 이스털린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스털린의 역설 대해 가장 정확히   있는 방법은, 이스털린 본인의 논문을 직접 찾아보는 . 진실을 찾아, 우선 이스털린의 1974 논문을 직접 확인해보자. 이스털린의 논문 가운데 가장 인용수가 높은 논문이다. 이스털린이 “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empirical evidence"라는 이름의 해당 논문에서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관계를  가지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고 .



 번째로는, 국가별로  시점의  국민들의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 조사. , 주어진  시점에  국가 안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행복을 비교했다고   . 이처럼 주어진  시점에서 변수의 분포가 어떠한 양상을 띠는지 비교하는 것을 '횡단면적 비교'라고 힌디. 그리고  결과, 모든 나라들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행복도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보다 높은 패턴을   있었.



 번째 비교는 소득이 높은 국가와 소득이 낮은 국가 사이의 횡단면적 비교. , 주어진  시점에서 소득이 높은 나라가 소득이 낮은 나라에 비해 평균적으로  행복한지를 보는 .   번째 결과, 다소 의외로, 국가 레벨에서는  횡단면적 관계가 불분명하였.



 번째 비교는 주어진  시점에서의 비교가 아닌 여러 시점들 사이의 비교,  시계열적 비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국가의 행복 수준 역시 올라가는지 조사한 .  결과, 1946년부터 1970년까지 이른바 '전후 황금기' 걸친 이십여 년간 미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행복 수준은 증가하지 않았다 사실을   있었.



그렇다면, 위와 같은 연구 결과에서 도대체 무엇이 역설적이길래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일까? '역설'이란, 논리적으로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한다. 논리학적으로, 동시에 참일  없는 명제를 서로 모순관계에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털린의 역설'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것이 동시에 참일  없는 모순관계에 있는 명제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 테다. 보통 일컫는대로, 그저 "돈으로 행복을   없다"거나, 혹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소득이 행복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의미라면, 그건 사람들의 상식과 직관에 어긋나는 것일지는 몰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역설'이라고 이름붙일 이유는 .



위에서 살펴본 1974년의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는,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가지 비교에서 모두 일관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명제가,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비교에서는 참인데, 국가별 횡단면 비교나 시계열적 비교에서는 모호하거나 거짓이었던 . 이처럼 참과 거짓이 동시에 성립하는 모순적 결과를 두고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 따라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여러 차원의 횡단면적, 시계열적 연구 사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 모순적 현상을 의미.



이스털린의 역설 반박하는 증거로 종종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연구가 소개되곤 한다. 디턴은 2008 논문에서 애초 이스털린의 논문에 비해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GDP  배씩 증가할 때마다 일정한 수준으로 행복 역시 증가하는 상관관계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기 때문(Deaton 2008).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증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 이스털린의 역설의 핵심은, 이런 상관관계가 횡단면적 연구와 시계열적 연구 모두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디턴의 연구는 국가 단위의 횡단면적 상관관계를 보여줄 , 같은 상관관계가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는지는 보여주지 는다. 이스털린도 역시 1974년의 연구 이후 학자들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국가 간에도 소득과 행복 사이의 횡단면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Easterlin, 1995). 디턴 본인도 자신의 위와 같은 연구 결과는 해석하기에 따라 "이스털린의 역설과 양립"  있다고 밝히기도 한다(Deaton 2008, p.70).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디턴이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함께  다른 연구(Kahneman & Deaton, 2010)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구 역시 마찬가지로  국가 안에서 나타나는 소득과 행복의 횡단면적인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일 ,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 해당 연구에서 디턴과 카네만은 연봉이 75000달러( 8100만원) 이상이라면 소득이 사람들을 항상 훨씬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한경비즈니스)” 하는데, 애초에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따라 증가하지 않는다는 , '이스털린의 역설' 아니다.



일정 구간부터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강조한 경제학자는, 이스털린보다는 차라리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라고   . 레이어드는 2005년의 저서에서 국가별 GDP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 그같은 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이 2 달러 이상인 나라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Layard, 2005; pp.32-33). 따라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 차라리 레이어드 교수가 GDP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전개한 주장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와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 모두, 경제 성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경제학자이고, 행복을 결정하는 변수로 절대소득보다는 상대소득을 주목한 학자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스털린의 역설과 레이아드 가설은 서로 르다.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려면, 횡단면적 연구에서 나타난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국가 레벨에서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 , 경제가  많이 성장한 나라가, 행복의 증가도  크게 경험했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했다고   .



이런 연구를 수행한 것이 바로, 스티븐 핑커가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 저스틴 울퍼스(Justin Wolfers) 2008 논문이다. 이들은 세계가치조사(WVS),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등의 서베이 데이터로써 GDP 성장과 국민의 평균적인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성립함을 보여준다(Stevenson & Wolfers, 2008). 그리고, 이같은 상관관계의 기울기(회귀 계수; 독립 변수가  단위 변화할  종속 변수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의미) 국가 사이에 나타나는 횡단면적 관계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한편으로 강조한다. 거듭,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절대소득( 소득의 절대적 크기)보다는 상대소득의 역할을 강조했. 하지만, 시계열적 관계나 횡단면적 관계나 비슷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는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발견은, 상대소득을 강조하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대한 반증이라고   .



이런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반박에 대해서 이스털린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 이스털린에 따르면,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단기의 경기 변동 효과와 장기의 경제 성장 효과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Mcvey, Switek, Swangfa & Zweig, 2010). 이같은 이스털린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에, 이스털린 본인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필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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